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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작성일 : 2021-08-12 09:07:04
익명 님의 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고전시가 상춘곡 공부를 하다가 한 구절이 잘 해독이 안 되어 질문 올려봅니다.
>
> 홍진에 뭇친 분네 이내 생애 엇더한고
> 옛 사람 풍류를 미칠가 못 미칠가
> 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한 이 하건마는
> 산림에 뭇쳐 잇셔 지락을 모를 것가
>
>
>밑줄 친 부분의 해석이 다소 모호하여 몇 가지 자료를 찾아봤는데, 통일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
> 1. 산림에 묻혀 지내어 (내가) 홍진의 지락을 모르겠는가 (한국문학통사)
>
> 한국문학통사 원문: "자기도 남들과 같은 '천지간 남자'여서 티끌세상 '홍진'에서 '지락'이라고 한 지극한 즐거움을 누릴 만하지만, 산림에 묻혀 지내는 기를 택해~"(2권 312p)
>
> 2. 자연에 묻혀 사는 지락을 (그들은) 모르는 것인가 (인터넷 홈페이지 '희망의 문학')
>
>2번 해석의 출처가 1번 해석보다 신뢰성이 떨어지고, 시가 원문과도 다소 동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2번 해석을 더 많이 봐왔고 또 신뢰성 있는 해석 중에 2번처럼 보는 것은 없는지 궁금하여 질문드립니다. 밑줄 부분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 적절할지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
음.. 저도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시라는 게 원래 해석이 다양해지는 게 당연한 건데 하나로 정하라니요^^
'모르다'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구분하라는 시험 문제를 안 내는 게 중요할 듯합니다. 학생들은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겠지만요 ㅠ
굳이 고르라면 저는 '그들은' 쪽을 지지합니다.
속세에 묻친 님들아, (나)의 삶이 어떠한가? (댁들은) 옛 사람 풍류에 (내가) 미친다고 보이는가?
세상의 남자 중에 (나) 같은 이 많지만은, "산림에 묻혀 있어 (내가/그들이) 지락을 모를 것가"
(나는) 몇 칸 초가를 벽계수 앞에 두고, (나는) 송죽 울창한 데 풍월주인 되었느니라.
1. 주체가 타인
속세에 묻친 님들아, 나의 삶이 어떠한가? 옛 사람 풍류에 미친다고 보이는가?
세상의 남자 중에 나 같은 이 많지만은, 그들은 산림에 묻혀 사는 지락을 모르는가?
(나는) 몇 칸 초가를 벽계수 앞에 두고, 송죽 울창한 데 풍월주인 되었느니라.
- '묻혀 있어' 부분을 '묻혀 있는 지락(산림에 묻혀 사는 지락)'으로 해석해야 되는 어색함이 생깁니다.
- 시의 전체 의미상으로는 이게 더 적절해 보입니다.
2. 주체가 화자 본인
속세에 묻친 님들아, 나의 삶이 어떠한가? 옛 사람 풍류에 미친다고 보이는가?
세상의 남자 중에 나 같은 이 많으니, 나 역시 산림에 묻혀 있다고 홍진의 지락을 모르겠는가?
(다만 나는) 몇 칸 초가를 벽계수 앞에 두고, 송죽 울창한 데 풍월주인 되었느니라.
- '많건마는'을 역접이 아니라 '많은데'처럼 배경으로 해석해야 하고
- '날만한 이 하건마는' 부분을 일종의 도치로 해석해야 하고
- 마지막에 '다만'이라는 전환 표지를 넣어 해석해야 의미가 자연스러워지겠네요.
- 그리고 "지락"을 '산림에 묻힌 지락'이 아니라 '홍진의 지락'으로 해석해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이 시에서 '지락'은 '긍정적 시어'이고, 시의 전체 내용상 '홍진'보다 '산림'이 더 본질적인 가치라고 본다면 '지락'이라는 표현을 오히려 홍진의 즐거움보다 산림의 즐거움을 가리켜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지락'은 그냥 세속적인 즐거움으로 해석되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할 즐거움과는 조금 거리가 먼 시어가 되겠죠. 근데 '지락'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