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언덕에
신동엽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1연 그의 얼굴, 2연 그의 노래, 5연 그의 모습 - 찾을 수 없다.
1연 그의 꽃, 2연 그의 숨결, 5연 그의 영혼 - 피어날지다, 살아갈지다.
3연 행인이 들길을 더듬는 이유 - 1, 2, 5를 담고 싶다.
4연 화자의 권유- 1이 없으면 2를 담고, 2가 없으면 5을 답을지네.
꽃은 봄에 피고, 1연에서 꽃이 피어'날'이므로 시의 배경은 아직 봄이 아닌 걸로 볼 수 있다.
그러면 3연 "들길 더듬는 행인아"에서 들길은 눈이 쌓인 겨울길이 되고 4연의 '눈길'은 눈내린 길이 된다.
눈길에는 눈도 있고 길도 있고 나무도 돌도 있을 텐데, 눈길이 '비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화자가 찾는 무언가가 비었다는 말이고, 이것을 흔히 '그'가 비었다로 해석한다. 시의 내용만으로 보면 길에 눈이 덮여서 꽃이 못 피니까 비어 있는 것은 꽃이 비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꽃은 1연에서 말한 그 꽃이다.
'바람'은 눈길 위에 분다. 눈길에서 그의 모습을 담을 수 없다면 그가 머물던 그 공기(=바람)이라도 담을지네. 공기, 바람은 모두 기체이고 이것은 2연의 숨결(=기체)이다.
그러나 그 눈길에는 바람 또한 비어있는 것 같다. 바람마저 못 담겠으면 ‘인정’을 담을지네. 라고 화자가 행인에게 권유한다. 꽃(1연)이 비었으면 숨결(2연)을 담을지네. 숨결(2연)이 비었으면 <인정>을 담을지네. 이때 <인정>이 무엇인지 4연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그래서 행인이 묻는다. "눈길과 바람은 모두 실체가 있는 것인데, 허허벌판인 ‘눈 쌓인 길’에 사람의 정이라고 할 만한 인정이 어디 있나요? 어떻게 담나요?"
그러자 화자는 5연에서 이렇게 마무리한다. “걱정하지 말게, 그의 ‘영혼’이 곧 피어날 것이라네.” 행인이 길에서 ‘그가 없다’라는 사실만으로 괴로워할 때, 행인은 그의 얼굴(1연), 노래(2연), 모습(5연) 즉, 당장 눈에 보이는 실체로서의 그가 없다는 점에서 괴로워한다.
이때 화자는 행인에게, 겨울 <눈>에 덮여 <길>에 꽃이 안 보이지만 곧 필 거야. <바람>에 실려가던 그의 노래는 안 들리지만 그 숨결이 담긴 바람은 늘 우리 주위에 불고 있을 거야. 그러나 그마저 안 느껴진다면 그의 ‘인정’, 그를 향한 우리의 ‘인정’을 기억해. 그의 인정이 담긴 그의 영혼은 반드시 부활하여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거야. 라고 행인을 위로하는 말을 건넨다.그게 시의 주제이다.
1연의 얼굴, 꽃은 '시각적 심상'이다. 2연의 노래, 숨결은 '청각적 심상'과 '촉각적 심상'이다. 우리는 흔히 시각을 가장 주된 감각으로 사용하고 청각을 다음으로 많이 사용한다. 촉각, 후각, 미각은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주된 감각은 아니며 특히 '그'라는 '어떤 사람'을 식별할 때 자주 쓰지는 않는다. 외모나 목소리로 사람을 판별하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을 찾으려 더듬는 행인 역시 '얼굴, 모습, 노래'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으로 그를 찾아 헤맨다. 먼저 시각적으로 '눈길이 비어있다.' 즉, 눈에 보이지 않음을 인식한다. 이어서 청각이나 촉각적으로 '바람도 비어있다.' 라고 인식한다. 이러한 순서 역시 시각적 심상과 청각, 촉각적 심상의 순서로 1, 2연이 배열된 이유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물질적인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화자는 행인에게 필요한 조언을 한다. '그'의 육신은 이미 사라졌고, 그 육신의 부활을 꿈꾸지 말라. 중요한 것은 '인정', '영혼'이다. 이것은 시각, 청각, 촉각으로 감각할 수 없는 것이다. 산에 언덕에 부활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영혼', 즉, '그의 정신'이다. 그렇다면 1연의 꽃, 숨결이 부활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이 시는 전체적으로 화자가 행인에게 말을 거는 형식이다.
1, 2연에서 화자가 "그의 꽃, 그의 숨결"은 반드시 다시 피어나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네. 라고 위로를 한다. 그러나 그게 진짜로, 꽃과 숨결이 되돌아온다는 뜻은 아니다.
3연에서 화자가 보니 행인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걸 보고 4연에서 화자가 말을 건다. "내가 말한 것은 진짜 꽃, 진짜 숨결이 아니네. 꽃이 안 보이면 바람을 담을지네, 바람이 안 보이면 인정을 담을지네. 그게 무엇이든 '그의 흔적'은 반드시 나타날 걸세." 행인은 속으로 생각한다. '인정이라니? 그런 말은 안 했잖아요?"
5연에서 화자가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꽃, 숨결로 표현하니 못 알아 듣는군. 다시 말하지. 산에 언덕에 피어나는 것은 그의 모습이 아니라 그의 영혼이라네. 그 영혼 또한 <그의> 영혼이 그대로 되돌아온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모든 자들의> 영혼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라네."
이 시의 주제는 '그의 영혼이 부활할 것에 대한 확신으로 행인에게 위로를 주겠다.'이다. 여기에 시대 배경을 넣으면 행인은 4.19 이후의 세대를 말하고 '그'는 4.19에 희생된 사람들을 말한다.그러나 '그'는 3.1. 운동일수도 있고 동학혁명일 수도 있고 5.18의 희생자들일 수도 있다. 그에 따라 '행인'의 의미도 달라진다. '그'에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으니 이것은 '상징'이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1, 2, 5연에서 시각 - 청/촉각 - 영혼 으로 이어지는 점층적인 수법을 써서 수준이 높은 행인도 알아듣고, 수준이 낮은 행인도 알아듣게 표현한다. 4연에서 눈길 - 바람 - 인정으로 연쇄적인 수법을 써서 행인의 행동과 1, 2, 5연의 흐름이 일치하도록 표현한다.
그리고 수미상관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1연이 한 말이 결국 5연에서 한 말과 같은 뜻임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행인에게 말을 거는 방식을 사용하여 독자에게 누군가가 따뜻하게 말을 걸어주는 느낌으로 위로를 주려고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남긴 노래나 숨결이 무엇인지는 해석에 따라 다양하므로 1 대 多 비유인 상징에 해당한다. 상징을 사용함으로써, 특정한 사건에 대한 추모의 시가 아니라 어떤 사유에서든지 아끼는 '그'를 잃은 사람이라면 이 시를 읽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의 시로 완성되었다.
원래 이 시는 1연만 있으면 모든 주제가 드러난다. 1연으로 끝날 수 있는 시이다. 그런데 행인에게 계속해서 2연과 4연과 5연을 덧붙여 나가는 구성을 보면, 결국 이 시의 출발은 3연임을 알 수 있다. 화자가 보기에, 끊임없이 '그의 부재'를 아쉬워하고 '그의 모습'을 찾아서 들길을 헤매는, 즉,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는 행인의 모습을 보고, 그에게 해줄 말이 생긴 것이다.어떤 '큰 사건'으로 '그'를 잃고 너무나 큰 실의와 상처로 고통받는 '남겨진 자(=행인)'들에게 화자가 위로를 건네는데, 어떤 식으로 건네야 좋을까? 그의 모습은 눈길 위에 있지 않아, 그의 모습은 바람결에 있지도 않아, 그의 모습은 인정(=영혼)으로만 남아 있을 거야. 당신이 계속해서 그의 인정을 '담는'다면(=잊지 않고 이어받으려고 노력한다면), 그의 영혼은 반드시 부활하여 우리 곁에 있을 거야. 그 '큰 사건'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 거야.
여기에 외재적 해석을 덧붙이면, 그 '큰 사건'은 4.19이고, 그의 '영혼'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이며, 그의 영혼이 산에 언덕에 피어났는지, 4.19 이후 세대는 그의 '인정'을 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는, 독자 각자의 수용하기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것이고, 신동엽이라는 시인은 왜 이런 시를 쓰게 되었는지 그의 전기적 사실을 바탕으로 시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