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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합]기말고사 후 시험지 풀이 수업
  • 관리자
  • 작성일 : 2022-08-12 20:03:56
    기말 고사 이후에 시험지 풀이하는 수업에 대한 이야기. 2011년에 쓴 글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국민학교 출신 아버지는 무덤을 만들어주고
    중학교 출신 ㉠의 아들은 10년 후
    어느새 아예 ㉡ 무덤을 없애버리고
    자리에 밭을 일구어 고구마를 심고
    20년 후, 또 ㉣의 손자는 ㉤ 밭마저
    아파트업자들에게 미련없이 팔아버리고
    아 그리하여 옛사람의 그림자도 사라졌다네
     
    - 김준태, 「제목을 붙일 수 없는 슬픔」

    14. 위 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역설법이 사용되었다.
    ② 촉각적 심상이 사용되었다.
    ③ 체념적인 어조가 느껴진다.
    ④ 화자는 할아버지의 손자이다.
    ⑤ 시의 주제는 점점 발전해가는 현대 사회이다.
     
    “학생, 이 문제 답이 몇 번이죠?”
    “3번이요.”
    “왜?”
    “체념적인 어조가 느껴지니까요.”
    “왜 체념적인 어조가 느껴지지요?”
    “읽어 보면 체념적이잖아요.”
     
    악순환이다. 이런 식으로 시험 문제를 풀면 아는 문제는 당연히 풀지만 모르는 문제는 영원히 못 푼다. 시험 문제를 푸는 기본적인 방식을 설명해 주고 싶었다. 시험 문제를 푸는 방식이라고 말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 주고 싶었다.
    생각하는 방법이란 무엇인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다. ‘생각하는 힘’은 곧 ‘이성’이고, 인간만이 이성을 가졌기에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이성의 반대말은 광기이다.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는 인간은 광인(狂人)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 과정을 옮겨 본다. 위의 14번 문제를 예로 들면, 이 문제는 ‘옳은 것’을 고르는 문제이다. 답지 ①~⑤가 옳은지 하나씩 확인한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답지 ①, ‘역설법이 사용되었다’는 O입니까, X입니까?”
    “X요.”
    “왜?”
    “역설법이 사용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맞지만, ‘왜’냐고 물으면 다음과 같은 단계에 따라 대답해야 합니다. 우선, 번호 ①과 ‘역설법’ 사이에 숨어 있는 네 글자를 되살려 보겠습니다. 답지 ①의 원래 문장은 ‘(이 시에는) 역설법이 사용되었다’가 됩니다. 이제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을 알려주겠습니다.”
     
    - ① 역설법이 사용되었다. (X)
    * 왜?
    1. 역설법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법이다.
    2. 이 시에는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법이 발견되지 않는다.
    3. 따라서, 이 시에는 역설법이 사용되지 않았다.
     
    “이 판서에서 문장 3. 과 답지 ① 의 내용은 일치합니까, 안 합니까?”
    “일치 안 해요.”
    “그러니까 답지 ①은 X 이죠. 그러면 ①번이 14번 문제의 정답입니까?”
    “아니요.”
    “왜?”
    “X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됩니다. 내가 ‘왜?’냐고 물었죠? 그러면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 알려줬잖아요. 다시 한 번 설명하겠습니다.“
     
    - 답지 ①은 14번 문제의 정답이 아니다.(O)
    * 왜?
    1. 14번 문제는 ‘옳은 것’이 정답이다.
    2. 답지 ①의 내용은 옳지 않다.
    3. 따라서, 답지 ①은 14번 문제의 정답이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시험 문제를 풀면, 정답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왜 정답인지, 오답이 왜 오답인지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중간, 기말 고사를 치고 나서 시험지 풀이를 해준 적이 거의 없다. ‘시험지 풀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만 다시 내용 정리해주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풀이를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험지 풀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몰랐고, 알았다 하더라도 시험을 치고 나서 다음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시험지 풀이’에 필요한 만큼의 차시를 할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0학년도에는 시험 문제의 답을 불러주는 것을 넘어서는 시험지 풀이 수업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중3 기말고사는 11월 초에 친다. 그 이후의 수업 시간은 완전히 교사 재량이다. 이 좋은 기회를 살려 기말고사 시험지 풀이 수업을 한 달 동안 했다. 내용은 간단하다.
     
    - 답지① A는 B이다.(O 또는 X)
    * 왜?
    1. B는 C이다.
    2. A는 C이다.(또는 C가 아니다.)
    3. 따라서, A는 B이다.(또는 B가 아니다.)
     
    여기서 소개한 방식은 전형적인 3단 논법을 간략화한 것으로, 엄밀히 따지면 논리적으로 오류이다. 그러나 일상적, 현상적으로는 오류가 아닌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생각하는 방법의 기초를 잡아주기에 적절하다. 또한, 학생이 겪는 어려움을 파악하기에 적절하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유용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학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촉각적 심상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 ㉡-각 문장에서 촉각적 심상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 ㉢-㉠과 ㉡을 보고도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이다. 물론 둘 이상의 어려움을 함께 겪기도 한다. 어쨌든, ㉠의 경우라면 촉각적 심상에 대해 다시 알려주면 된다. ㉡의 경우라면 촉각적 심상을 함께 찾아보는 연습을 더 하면 된다. ㉢의 경우라면 기초적인 학습 능력이 없는 경우이므로 수업 중에 별도로 대책을 세우기는 어려우므로 점심 시간이나 방과후를 이용해서 개별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이 방식은 국어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이 공통이다. 과목마다 달라지는 것은 전제1이다. 나머지 2와 3은 국어의 방법과 똑같은 순서로 적용만 하면 된다. 각 과목의 수업 시간에 배우는 것도 전제 1이다.
    그런데 인강이나 학원의 문제 풀이, 문제지와 자습서의 ‘정답 및 해설’ 코너를 보면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결론3을 직접 알려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해서는 실력이 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6. ㉠~㉤의 품사 명칭이 옳은 것은?(4점)
    ① ㉠ - 명사 ② ㉡ - 대명사 ③ ㉢ - 조사 ④ ㉣ - 부사 ⑤ ㉤ - 관형사
     
    - ① ㉠은 명사이다.(X)
    * 왜?
    1. 명사는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이다.
    2. ㉠은 대명사이다.
    3. 따라서, ㉠은 명사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명사냐 아니냐가 아니다. ‘명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접하는 무수히 많은 단어들의 품사를 일일이 암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1.과 2.보다 3.에 집착한다. 학원의 문제 풀이 강의나 문제집과 자습서의 풀이도 3.에 집착한다. 1.을 암기하고 2.를 연습하고 1.과 2.를 통해 3.을 이끌어내는 추론의 과정을 익혀야 한다.
    ‘왜’라는 질문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지기도 한다.
    “㉠은 명사가 아니다. 왜? ㉠은 명사이니까. 왜? 명사는 대상의 이름을 나타내는 품사이니까. 왜? ··· ”
    이어지는 ‘왜’ 중에서 몇 단계까지 대답할 수 있는지가 생각의 깊이를 재는 척도가 된다.
     
    고등학교 언어 영역 대비를 위해 선생님들은 문제집 풀이를 많이 해 준다.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 문제를 잘 풀게 된다고 한다. ‘감을 잡는다’는 의미이다. 문제를 질리도록 많이 풀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도 좋지만 ‘문제를 푸는 방법’을 알고 풀면 더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방법의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시험 문제 풀이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생각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제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 결론에 대해 이유를 말하는 방법을 익혀 ‘광기’가 아닌 ‘이성’을 가진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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