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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보는 이와 말하는 이
  • 관리자
  • 작성일 : 2024-02-13 02:45:49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처음 읽었을 때, 1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씌어 있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위의 작품(욘 포세, <보트하우스>)도 1인칭 전지적 시점에 해당한다.
    혼란의 원인은 전통적인 시점 분류 방식 때문이다. 브룩스와 워렌의 시점(point of view) 연구에서(Brooks, Cleanth & Robert Penn Warren, 1943:589), 그들은 시점의 사분법 체계를 완성했다.

    그런데 '인칭'에 의해 시점을 나누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1인칭 시점의 1인칭 ‘나’는 ‘화자’를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3인칭 시점에서 ‘그’는 ‘화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만약 3인칭이 주인공 인물을 ‘그/그녀’로 지칭하기 때문에 3인칭이라면, 1인칭의 ‘나’는 화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주인공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야 일관성 있는 명칭이 된다. 그런데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는 ‘나’가 주인공을 가리키지 않는다. 따라서 1인칭이냐 3인칭이냐 하는 분류는 별로 의미가 없다. 
    1인칭이냐 3인칭이냐를 구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1인칭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과 타인의 ‘외면’으로 ‘시점’이 제한된다는 것, 1인칭 관찰자가 주인공의 ‘외면’으로 ‘시점’이 제한된다는 것, 그리고 ‘극화된 화자’와 시점의 차이에 따라 서술상의 효과가 달라지고 서술 트릭까지 성립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3인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아래 인용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일부이다. 이걸 2인칭 시점이라고 불러보자. '화자=2인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째서인지 이 소설의 화자는 '나=주인공'의 일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자꾸 나에게 "너 그랬잖아."라고 상기하는 역할을 한다.

    너의 엄마가 지하철 서울역에서 아버지의 손을 놓친 그때 너는 중국에 있었다. 북경에서 열린 북페어에 동료 작가들과 함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너의 엄마를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린 그 시간은 네가 북페어의 한 부스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네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브룩스와 워렌의 시점 체계에서 더 큰 문제는 위의 <보트하우스>와 같은 작품의 시점을 설명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즈네뜨(Genette, Gérard, 1992)는 ‘화자’와 ‘초점화자’를 구분했다. ‘화자’는 서술자이고, 말하는이이다. ‘초점화자’는 사건을 보는이, 경험하는이, 느끼는이, 생각하는이이다. 즈네뜨의 분류는 브룩스와 워렌과 조금 다르다.

    즈네뜨의 분류에서는 '인칭' 은 없고, 이야기에 등장하느냐 등장하지 않느냐가 기준이 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위의 <보트하우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화자'가 '이야기의 상위(조감적)'에서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 된다.
    기본적으로 장면 장면마다, 나아가 문장 하나하나마다 ‘초점화자’가 존재한다. 그 초점화자가 기본적으로는 ‘화자’이기 때문에 특별히 초점화자가 달라지는 경우만이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초점화자가 정해지는 방식을 '초점화'라고 할 때, '비초점화', '내적초점화', '외적초점화'의 단계가 성립한다.
    1) 비초점화는, 화자가 인물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이야기하는 전지적 시점이라 할 수 있다.
    2) 내적초점화는, 화자가 정해진 인물의 눈에 비친 것만을 인물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제한된 시점으로, 인물에 속박된(character-bound) 초점화, 인물-초점화라고 할 수 있다.
    2-1) 초점화가 한 주체에 의해 실현되면 ‘고정 초점화’라고 하고
    2-2) 여러 주체로 옮겨질 때에는 ‘변동 초점화’라고 하며,
    2-3) 한 대상에 대해 여러 주체가 동시에 초점화를 실현시킬 경우 ‘복수 초점화’라고 한다.
    3) 외적초점화는, 화자가 인물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적게 이야기하는 경우로서 인물에 속박되지 않은(non-characterbound) 초점화 혹은 화자 초점화라고도 한다(Genette, Gérard, 1992). 이것은 관찰자 시점에 해당한다.

    초점화는 지속의 정도가 다르다. 작품의 전체 분량에서 <화자>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초점화 대상>도 달라진다. ‘화자’가 달라지는 경우, 시점의 변환으로 눈에 잘 띄지만 ‘초점화자’가 달라지는 경우, 텍스트를 꼼꼼히 읽지 않으면 잘 발견하기 어렵다. <두 인물>이 각각 주인공이 되어 번갈아 제시되는 소설의 경우, ‘초점화자’가 달라진다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화자도 달라진다. 하지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는 ‘시점’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학교에서 ‘시점’을 가르쳐야 할까, 화자를 가르쳐야 할까?
     
    그러나 즈네트의 분류만으로 모든 화자의 문제가 해결 되는 것은 아니다. 화자는 그만큼 존재 양식이 다양하다. 그 다양성에 주목한 이론가는 웨인 부스이다. 그는 다양한 화자의 존재 양식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화자의 종류를 설정하였다(Booth, Wayne C, 1990: 173~190), 1) 극화된 화자/극화되지 않은 화자, 2) 자의식적 화자/비자의식적 화자, 3) 전지적 화자/제한적 화자, 4) 신빙성 있는 화자/신빙성 없는 화자 등이 그것이다. 이중 1)과 3)이 즈네뜨의 분류틀이 된다. 4)는 ‘동백꽃’,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설명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교육과정에서는 자꾸만 '보는이(초점화자)'와 '말하는지(화자=서술자)'를 구분하도록 하는 것이다. 

    [9국05-04] 보는 이나 말하는 이의 특성과 효과를 파악하며 작품을 감상한다.
    [9국05-04] 이 성취기준은 시의 화자 또는 소설의 시점 및 서술자에 주목하여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기 위해 설정하였다. 문학 작품에서 누가 보는가,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전달하는 내용이나 작품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 보는 이나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보는 이나 말하는 이의 특성이 작품 전체의 주제나 분위기에 어떤 효과를 미치는가에 주목하며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다.
     
     
    1) 변씨는 “그러시오.”하고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허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 이 부분을 "허생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실띠의 술이 빠져~" 라고 쓰면 어떤 효과가 달라지는가?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을 초점화자로 설정하여 허생을 거지로 묘사한 것은, 허생의 겉만 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과, 사람 보는 눈이 있는 '변씨'의 안목을 대조하는 데에 적절하다. 자제와 손들이 보기에 거지였으나, 실은 아니었다, 라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화자의 입으로 "허생은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라고 쓰면, 그러한 안목의 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2) 그때도 김 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 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지축으로 남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닿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불거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 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홉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 밑줄 친 부분에 '오라질 년'이 나오긴 하지만, <운수 좋은 날>의 화자는 아내를 '오라질 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첨지가 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3)
    ㄱ.주부가 오니까 병화는 씹던 것을 이제야 삼키고, “그 사람 어데 갔소?”하고 묻는다.
    ㄴ.“예, 지금 막 목욕 갔어요. 곧 오겠지요.”하고 중턱에 서서 싱긋 웃고는 시선을 덕기에게 준다.
    ㄷ.주부의 눈에 비친 덕기는 해끄무레하고 예쁘장스러운 똑똑한 청년이었다.
    -> ㄱ, ㄴ에서 화자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외적초점화'를 하고 있다. 그런데 ㄷ에서는 '주부'의 관점으로 덕기를 묘사하는 '내적초점화'로 바뀐다. 
    중학교 2학년에서 [9국05-04]  성취기준을 어디까지 깊이 다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위의 내용은 2000년도에 한귀은 선생님한테 배웠다.
    참고 자료: 한귀은(2003), <현대소설교육론>, 민병욱 외(2004), <교육연극의 현장>
    인터넷에서 더 잘 정리된 자료를 찾았다.
    https://m.cafe.daum.net/tarantin/KOy/36
    변지연(2000), 화자이론의 역사와 전망-플라톤의 {공화국}에서 수잔 랜서의 {시점의 시학}까지, 한국 서사학회지 <내러티브>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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