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상의 날개에 대한 반영론적 해석을 짧게 정리한 적이 있다. 옛날 작품=반일 저항 이라는 기계적인 해성에 대한 일종의 풍자였다.
김유정의 봄봄 역시 일제 강점기를 대입할 수 있다.
주인공은 1919년 삼일 운동 직전의 독립운동가들이다.
당연히 장인은 일본의 강제 점령에 의한 민족 지배이다.
점순이는 우리 민족 그 자체이거나, 민족의 해방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점순이를 얻기 위해 장인에게 봉사한다.
독립운동가들도 민족의 해방을 얻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
그런데 일본은 "조선인의 자주적인 역량이 길러지지 않았으므로"라는 이상한 핑계를 대고 독립시켜 주지 않는다.
마지막 자연에서 장인의 착취를 참다 못한 주인공은 장인에게 봉사한다. 이것은 더 이상 참지 못한 삼일운동이나 개별적인 독립 운동들의 시작을 의미한다.
점순이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을 때리며 장인 편을 든다.
이것이 우리 민족 자체의 이중성 또는 민족 해방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를 반영한다.
점순이는 '나와의 혼인을 바란다'라는 단일한 인격을 가진 존재인 줄 알았으나 때에 따라 장인의 편을 든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백성들도 일부는 독립운동을 지지하였으나 일부는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순사나 앞잡이 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사회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작품을 배우는 성취기준에서 <소재> 중심으로 수업이 흘러가지 않고 <주제> 중심으로 수업이 흘러가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억지를 써서라도 작품의 전체 의미를 <반영론적>으로 해석해 보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운수 좋은 날>에서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읽어내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반영된 작품 감상하기"와, <나룻배와 행인>이라는 낭만적인 시를 "반영론적으로 해석하기"는 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