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슬픔의 치유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07 03:14:51
    <상실의 시대> 中 에서 ..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 나오코의 여러 가지 모습을 생각했다.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속에는 나오코의 추억이 너무나 가득히 채워져 있었고, 그 추억들은 정말작은 틈새를 억지로 헤집고 잇따라 밖으로 퉁겨 나오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분출을 억누르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나는 그녀가 그 비 내리는 아침에 노란 비옷을 입고 새집을 청소하거나 모이 포대를 나르고 있던 광경을 생각해 냈다. 절반쯤 무너져 버린 생일 케이크와, 그날 밤, 내 셔츠를 적신 나오코의 눈물의 감촉을 생각해 냈다.
    그 겨울에 그래, 그날 밤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에 그녀는 카멜 오버코트를 입고 내 곁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머리핀을 꽂고, 언제나 그것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해맑은 눈으로 내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푸른 가운을 입고, 소파 위에서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다 턱을 괴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그녀의 이미지는 밀물처럼 잇따라 나에게 밀려와서, 내 몸을 기묘한 장소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 기묘한 장소에서, 나는 사자(死者)와 함께 살았다. 거기에는 나오코가 살아 있어서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혹은 포옹할 수도 있었다.
    그 장소에서 죽음이란 삶을 결말짓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다. 거기에선 죽음이란 삶을 구성하는 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나오코는 죽음을 안은 채 거기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와타나베. 그건 그저 죽음일 뿐이야. 마음 쓰지 말아요" 하고.
    그런 장소에선 나는 슬픔이란 것을 느끼지 않았다. 죽음은 죽음이고, 나오코는 나오코였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말아요, 나 여기에 있잖아요? 하고 나오코는 부끄러운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언제나와 같은 사소한 몸짓이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치유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죽음도 그리 나쁘진 않은 것이구나, 하고. 그래요, 죽는다는 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에요, 하고 나오코는 말했다. 죽음이란 건 그저 죽음일 뿐이에요, 게다가 나는 여기 있으니 아주 편안해요. 어두운 파도 소리 틈에서 나오코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이윽고 썰물이 되자 나는 혼자서 모래밭에 남아 있었다. 나느 무력해서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슬픔이 깊은 어두움이 되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럴 때, 나는 혼히 혼자서 울었다. 운다기보다 흡사 땀처럼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다.
    기즈키가 죽었을 때, 나는 그 죽음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체념으로 익혔다. 혹은 익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이런 것이었다.
    "죽음은 삶의 대극(對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진리였다. 우리는 살아감으로 해서 동시에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배우지 않으면 안 될 진리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나오코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떠한 진리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마음껏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밖에 없으며, 그리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다음에 닥쳐 오는 예기치 않은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혼자서 그 밤의 파도 소리를 듣고 바람 소리에 귀를 귀울였으며, 매일처럼 골똘히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위스키를 몇 병씩이나 비우고, 빵을 씹고, 물통의 물을 마시고, 머리를 모래투성이로 만든 채, 배낭을 메고 초가을의 해안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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