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펌] 야간비행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07 02:58:59
    야간비행 - 이태준 수필집 『無 序 錄』 중에서

      요즘 좀 뜸해진 모양이나 한동안 행동주의니 능동정신이니 하고 꽤 작자들을 현황케 하였다.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이 유명하다기에 그 무렵에 읽어보았다.
      호리구찌대학의 번역인데 원문도 그런지는 몰라도 문장 묘사가 셰익스피어에게서와 같은 고전미 도는 형용사들에는 놀라웠다. 문장에부터 새로운 감촉이 있으려니 했던 것은 나의 지나친 기대였다. 내용이 비행하는 사실을 쓴 것인만치 군데군데 스피드가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으레 가질 수 있는 수법이다.
      다만 읽고 나서 머릿속에 묵직하게 드는 것은 그 항공회사 지배인 리베에르의 성격이라. 그에게 느껴지는 것은 '청년'이요 그리고 감정과 의지를 냉정히 정리해 나갈 수 있을 때 누구나 행동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웅변이다.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나서 '히틀러 만세!'를 부르듯이 나는 이 <야간비행>을 읽고 나서 '리베에르 만세!'를 마음속에 한 번 불러주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누구나 읽기에 흥미 있는 것, 보통 사람이 체험할 수 없는 비행에 관한 더구나 야간의 모험비행, 그러다가 공중에서 희생되고 마는, 그런 신문기사라도 호외적 뉴스 재료인 것을 마음속에 경험해보는 점이다. 그 파비안 기(機)의 최후의 밤, 폭풍우권에서 상승해가지고 아래는 구름바다, 위에는 달과 별뿐, 그 신비한 고층 천공의 광경이란 다른 문학에서 찾을 수 없는 순수한 미였다.
      <야간비행>만을 읽고 행동주의 작품을 말할 수 없겠지만, 이 소설에서 백점(百點)으로 행동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하고 어느 정도까지 믿고 개념을 말할 수 있을 것도 믿어진다.
      그런데 모든 새 사조(思潮)가 그렇듯이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킬 뿐, 그래서 모든 작가에게 반성을 줄 뿐, 그뿐일 것이다. 반성을 주는 미덕을 남기고 희생될 뿐이지 이것이 소설의 신원리로 반석 위에 나앉을 것은 못 된다.
      너무 전기감(傳記感)이 나는 것이 예술로서 퇴보요 너무 사실에 의거해야 하는 것이 이런 소설의 약점이다.
      그러나 일시 유행사조라 하여 비웃을 것이 아니라 이 <야간비행>은 작가 된 이 한번 맛볼 만한 새 불란서 요리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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