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마의 산
  • 관리자
  • 작성일 : 2018-04-04 06:39:06
    낯선 땅에 살기에 익숙해진다는 것, 이전의 습관을 바꾸어 새로운 땅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힘들기는 하나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중략) 원인은 오히려 정신적인 것에 있다. 즉 시간의 체험이 원인이다. 간단없이 같은 생활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시간의 체험이 마모되어버릴 위험이 있는데, 이 시간 체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 감정 자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한편이 약해지면 거기에 따라 다른 편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지루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고 방식이 만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는 생활 내용이 흥미 깊고 신기하면 그 때문에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단조라든가 공허라는 것은 시간을 잡아늘여서 지루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많은 시간 무한히 긴 시간인 경우에는 공허와 단조는 도리어 시간을 단축하고 무와 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그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흥미로운 시간이면 한 시간이나 하루 같은 것은 그것을 단축하고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이면 그 걸음에 넓이, 무게, 부피를 주기 때문에 사건이 많은 세월은 바람에 불려가듯 빈약하고 공허한 세월보다 훨씬 더디게 지나간다. 따라서 시간이 길고 지루하다는 것은 사실은 생활이 너무 단조로운 나머지 생겨나는 시간의 병적인 단축으로서, 요컨대 많은 시간량이 막간없이 계속되는 단조로움 때문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축되고 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같은 생활이라면 수없이 많은 날도 하루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완전히 같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도 무서우리만큼 짧게 느껴지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시간 감각의 마비를 의미한다. 혹은 적어도 그 이완을 의미한다. 청춘시절이 비교적 더딘 데 비해 그 후의 세월이 차차 바쁜 걸음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이 습관이라는 것에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새로운 습관을 갖는 것과 습관을 바꾸는 것들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시간 감각을 신선케 하며 시간의 체재를 젊게 하고 강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 또 생활 감정 전체의 갱신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습관의 갱신, 즉 변화와 에피소드에 의한 휴식과 회복, 이것이 온천행 등의 목적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처음 며칠은 힘차고 육중한 걸음걸이를 되찾게 해주지만, 그것은 6일 내지 8일 정도 계속된다. 그리고 '익숙해짐'에 따라 차차 발걸음이 짧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은 나날이 가볍게 스쳐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예컨대 4주일쯤 체류한다면 마지막 한 주일은 불쾌할 만큼 총총히 지나간다. 물론 이 시간 감각 갱신의 효과는 일상 생활 속에 삽입된 여행 후에도 남아 이전의 일상 생활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 오래 남아서 효력을 미친다. 그리하여 여행 후의 며칠간은 역시 신선하고 넓이가 넓고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그것도 며칠 동안 뿐이다. 평소의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거기에 복귀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마의산」,토마스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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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에 대한 생각이 신선해서 적어둠. 이 단락의 마지막 말이 압권이다. "이러한 견해를 여기에 삽입한 것은 2, 3일 지나서 한스 카스토르프 청년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사촌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작자 자신도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완벽한 개입이여.. (옛날 소설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다시 생각해보니..밀란 쿤데라 소설도 비슷한 식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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