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짓기]비슷한 것
  • 관리자
  • 작성일 : 2018-03-30 17:01:27
    비슷한 것


      어제는 부경대에서 국어교육론 첫 수업을 했다. 교재는 이대규 선생님이 쓴 ‘국어 교육의 이론’이다. 용어의 엄밀한 정의를 추구하는 이대규 선생님의 뜻에 따라 국어교육론 수업도 국어교육을 설명하는 여러 용어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쪽으로 목표를 세웠다.
      서론을 한 문장씩 읽으면서 문장의 구조를 분석하여 글의 다음 내용을 예측하고, 개념을 정의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각각의 단어에 담긴 함의를 맥락에 따라 파악하면서 진행하였다. 두 문단을 읽는데 40분이 걸렸다.
      3문단에 이런 말이 나왔다.
      ‘교과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는 말에 과목이 있다.’
      나는 늘 하던대로 이렇게 설명하였다.
      “교과와 비슷한 것이 과목이라고 했죠? 비슷하다고 쓴 것은 결국 다르다는 말입니다. 교과와 과목이 같은 거라면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고 했겠죠?”
    그리고 70쪽 중에서 1쪽만 읽었는데 100분이 다 흘렀다. 질의 응답 시간이 되자 저 말이 충격이었는지 다른 질문은 없고 ‘비슷하다는 말이 왜 같다는 말이 아닌지, 왜 비슷하다가 다르다는 뜻인지’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다.
      “비슷하다가 다르다라면, 다르다는 뭐라고 불러요?”
      ”같다, 비슷하다, 다르다 이런 말들은 사물 간의 관계를 표현합니다. 사물 간의 관계는 같거나, 다르거나, 비슷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 셋은 같은 층위가 아닙니다. 사물 간의 관계는 우선 ‘같다’, ‘다르다a’로 나누고 ‘다르다a’는 다시 ‘비슷하다’와 ‘다르다b’로 나눠지는 거죠. 관계[같다, 비슷하다, 다르다]가 아니라 관계[같다, 다르다a[비슷하다, 다르다b]]의 구조로 보아야 합니다. 이 질문은 ‘다르다a’와 ‘다르다b’를 각각 구별하는 용어가 있냐는 질문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필요하면 적절한 용어를 개발해 보세요.”
      “시에서 ‘비슷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한다’라고 할 때는 비슷하다가 ‘같다’로 쓰인 거 아니에요?”
      ” 이것은 컵에 물이 반쯤 찼느냐, 물이 반쯤 비었느냐를 보는 관점과 같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죠? ‘비슷하다’는 말은, 그 둘은 분명히 다르지만 공통점도 발견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맥락에 따라서 그 다름에 주목할 때도 있고, 그 공통점에 초점을 맞출 때도 있겠죠? 방금 하신 질문에서는 문장 구조의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로 이해해야겠죠? 국어교육에서 아이들에게 단어를 가르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단어의 뜻과 함께 그 단어가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함께 알려주어야 합니다.”
      내가 ‘비슷하다’를 곧바로 ‘다르다’로 이해하게 된 것은 정민 선생님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부터였다. 그 책을 읽지 않아서 제목의 본의는 모르겠지만 이대규 선생님의 수사학 수업 이후로 개념의 엄밀한 정의에 골몰해 온 나는, 그 제목을 내 식대로 해석하여 써 먹고 있다.
    그런데 질문은 예상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갔다.
    “우리는 비슷해. 이렇게 말하면 그게 우리는 달라. 라는 말은 아니잖아요?”
    수강생 중 한 명이 비슷하다를 다르다로 해석하는 내 말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떠올렸다고 했다. 다른 수강생들도 질문에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한 후에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였다.
      ” 음, 그렇죠. 우리 사이에 같은 점들이 많이 발견되면 우리는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좋아지게 됩니다. 다만 ‘우리는 비슷하니까 우리는 같아!’라고 잘못 이해하면, 다른 점이 발견되었을 때 ‘우리는 같은 줄 알았는데 실망이야.’ 하면서 속상하고 서운해하고 멀어지게 됩니다.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나랑 꼭 같은 사람을 발견한 줄 알고 반가워하고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나와는 좀 다른 점들이 발견되면서 실망하고 서운했던 경험들 있으시죠? 비슷함이 결국 다름을 전제한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비슷해’ 하면서 좋아하더라도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겠죠? 그리고 나중에 다른 점이 나타나도 실망할 일도 없겠죠? 흔히들 사람을 나무랄 때 ‘너는 개념이 없어’라고 하는데, 이제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셨을 거예요.”
      수강생들 사이에서 낮은 탄성이 쏟아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이 심각해지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수업의 핵심은 ‘비슷하다’가 ‘같다’냐, ‘다르다’냐에 대한 토론은 아니었다. 학술적인 ‘OO론’이라는 책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맥락에 따라 정확하게 해석하는 태도를 가져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슷하다’는 표현이 쓰였을 때 그것을 곧바로 ‘같다’라는 일상생활의 용법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어떤 이론을 잘못 이해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가르침’과 ‘배움’의 간극은 여전히 멀어서 나는 ‘국어교육론’을 가르쳤지만 수강생들은 ‘인간관계론’을 배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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