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말(동물)'을 그리라고 하면 옆에서 본 모습을 그린다.
'도마뱀'을 그리라고 하면 위에서 본 모습을 그린다.
별 다른 주문 없이 '사람 얼굴'을 그리라고 하면 정면에서 본 모습을 그린다.
이런 것이 "형상화"할 때 기본형인데, 기본형은 대상의 가장 큰 특성을 보여줄 수 있는 면을 그리게 된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을 그리라고 하면 정면에서 본 눈이 특성을 보여주고,
인간의 "발"을 그리라고 하면 옆면에서 본 발이 특성을 보여준다.
이집트 벽화는 "정면 눈"과 "측면 발"을 동시에 표현하는데, 왜 그런 식으로 그렸는지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의 옆얼굴을 직접 그린다고 생각해 보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그려 보자. 그림 속의 얼굴은 왼쪽을 보고 있는가, 오른쪽을 보고 있는가?
설문 조사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경향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발명하던 순간을 추측해 보자.
세종대왕이 공기의 파동에 불과한 '[ㄱ]' 소리를 시각적으로 붙잡기 위하여
발음 기관을 본떠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던 그 순간,
세종대왕은 왼쪽 얼굴을 떠올렸을까, 오른쪽 얼굴을 떠올렸을까?
나는 구강 단면도를 수업 자료를 많이 쓰는데, http://jangi.net/RG/rg4_board/view.php?bbs_code=free&bd_num=836
단면도의 옆얼굴은 항상 왼쪽을 보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야 자음과 발음기관의 모양을 설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훈민정음을 수업할 때, 이렇게 말한다.
"세종대왕이 만약 그때 순간적인 판단으로 오른쪽 보는 옆얼굴을 떠올렸다면, 한글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종대왕이 아랫니를 상형했기 때문에 'ㅅ'의 모양이 ㅅ이 된 거다. 만약 세종대왕이 윗니를 상형했다면, ㅅ, ㅈ, ㅊ 의 모양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ㄱ, ㄴ, ㅅ 의 모양이 완전히 달라지더라도 거기에 담긴 원리에는 변함이 없고, 한글이 배우기 쉬운 문자의 지위에도 흔들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