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학에서의 양도논법은 논리학을 위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화법 영역의 토론에서도 배워야할 기술 중 하나이다.
상대를 함정에 빠뜨릴 때 양도논법으로 선택을 강요할 수 있고,
상대가 양도논법으로 나올 때 오류를 지적하거나 뿔 사이로 지나갈 길을 찾을 수 있다.
공자에게는 사람들이 묻기는 하였지만 감히 따지는 일이 적었는데
맹자는 좀 만만해 보였는지 사람들이 자꾸 시비를 걸었다.
<1> [맹자] 양혜왕장구<제8장> 제선왕: 탕왕이 걸왕을 몰아내고 무왕이 주왕을 쳤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왈: 전에 있습니다. 제선왕: 신하가 자기의 임금을 시해해도 괜찮습니까. 맹자왈: 인(仁)을 해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殘)이라 하며, 잔적(殘賊)한 사람을 일개 필부라고 합니다. 무왕이 일개 필부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걸왕과 주왕은 희대의 폭군이다. 악인에게 욕을 할 때 예전에는 '걸주 같은 놈'이라는 말을 쓸 정도였다. 걸왕의 폭정을 몰아낸 탕왕과 주왕을 몰아낸 무왕은 각각 걸왕과 주왕의 신하였다. 무왕의 아버지 문왕도 주왕의 신하였고 주왕의 폭정에 반대했으나 끝내 왕을 몰아내지는 않았다. 군신의 도리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제선왕은 이를 빗대어 맹자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것이다.
맹자는 개념을 재정의함으로써 딜레마를 쉽게 빠져나왔다.
<2> [맹자] 이루장구상<17> 순우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손을 잡지 않는 것이 예(禮)입니까? 맹자왈: 예(禮)이지요 순우곤: 형수가 물에 빠지면 손을 잡아 끌어 당겨 줍니까? 맹자왈: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끌어 당겨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승냥이나 이리와 같은 짓이지요. 순우곤: 형수와 손을 잡아도 됩니까? 맹자왈: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지 않고 물건도 직접 주고 받지 않는 것은 예(禮)이고, 형수가 물에 빠진 것을 손으로 끌어 당겨 주는 것은 임시방편이지요. 임시방편을 쓰고 나면 잊어버려야지 그것을 예로 삼아선 안 됩니다. 순우곤: 지금 온 세상이 물에 빠졌는데도, 선생님께서 끌어 당겨 주시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왈: 온 세상이 물에 빠졌을 때는, 도(道)로써 구원(救援)해 주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는 손으로 끌어 당겨 주는 것이지요. 당신은 이 세상을 구원하는데 손으로 할 것이요?
이와 비슷한 이야기. 길을 가던 스승과 제자,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이 시냇물을 건너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처녀를 만났다. 처녀를 등에 업고 물을 건네준 한참 뒤 경허 스님에게 만공 스님이 물었다.
“출가자가 어찌 젊은 여자를 업을 수 있습니까?”
“나는 그 처자를 냇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처자를 업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