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반딧불이
  • 관리자
  • 작성일 : 2018-04-12 11:26:39
      그달 하순께에 돌격대가 나에게 반딧불을 주었다. 반딧불은 인스턴트 커피 병에 들어 있었다. 병 속에는 풀잎과 물이 약간 들어 있었고, 뚜껑에는 자잘한 공기 구멍이 몇 개 뚫려 있었다. 주위가 아직 밝아서 그것은 별다를 것도 없는 냇가의 검은 벌레로밖엔 보이지 않았지만, 돌격대는 그것이 틀림없는 반딧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반딧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했고, 나는 특별히 그것을 부정할 이 유도 근거도 없었다. 그래, 반딧불이야. 반딧불은 왠지 졸리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미끌미끌한 유리벽을 오르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그만 밑으 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마당에 있었어." "여기 마당에?"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이 근처의 호텔에서 여름이 되면, 손님을 끌기 위해 반딧불을 풀어 놓잖 아. 그것이 이리로 흘러 들어온 거라구." 그는 검은 보스톤 가방에다 옷가지며 노트를 쑤셔 넣으면서 돌아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여름 방학에 들어선 지도 이미 몇 주일이 지났기 때문에 아직 기숙사에 남아 있는 건 우리 정도 였다. 나는 별로 고베로 가고 싶지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계 속 하고 있었고, 그에겐 실습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실습도 끝나서 그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돌격대의 집은 야마나시에 있었다. "이거 말이지, 여자한테 주면 좋을 꺼야. 틀림없이 좋아할 테니까" 하고 그가 말했다. "고마워." 하고 나는 말했다. 날이 저물자 기숙사는 휑뎅그렁한 게 마치 폐허처럼 느껴졌다. 국기가 게양대 에서 내려지고, 식당 창문에는 전등이 켜졌다. 학생 수가 줄어든 탓으로 식당 전 등은 늘 절반밖에 켜 있지 않았다. 오른쪽 절반은 꺼지고 왼쪽 절반만 켜져 있 었다. 그런대로 은은하게 저녁 냄새가 풍겨 왔다. 크림 스튜 냄새였다. 나는 반딧불이 들어 있는 인스턴트 커피병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 갔다. 옥상 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누군가 걷어들이는 것을 잊은 흰 셔츠만 빨랫줄에 널려 있어서, 무슨 속 빈 껍데기 처럼 해질녘의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옥상 구석에 있는 철제 사다리를 타고 급수탑 위로 올라갔다. 원통형의 급수 탱크는 낮 동안에 듬뿍 빨아들인 열로 해서 아직도 따스했다. 좁다란 공간 에 앉아 난간에 기대니 약간 이지러진 하얀 달이 눈앞에 떠올라 있었다. 오른쪽에는 신주쿠 거리의 불빛이, 그리고 왼쪽에는 이케부쿠로 거리의 불빛 이 보였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선명하게 빛의 물결을 이루며 거리에서 거리로 흐르고 있었다. 각양각색의 소리가 서로 어울린 부드러운 음향이 마치 구름처럼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하지만 그 빛깔은 너무나 희미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반 딧불을 본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는데, 그 기억 속에서 반딧불은 훨씬 뚜 렷하고 선명한 빛을 여름밤의 어둠 속에서 발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반딧 불이란 그처럼 선명하게 타오르는 듯한 빛을 발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 다. 반딧불은 지쳐서 죽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 주 둥이를 붙잡고 몇 번인가 가볍게 흔들어 봤다. 반딧불은 유리벽에다 몸을 부딪 히며 아주 조금 날았다. 하지만 그 빛은 여전히 희미했다. 반딧불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전제였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거기가 도 대체 어디였던가? 나는 그 광경을 생각해 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장소와 시간은 도무지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밤에 물소리가 들렸다. 벽돌로 만든 구식 수문도 있었다. 핸들을 빙빙 돌려서 열고 닫는 그런 수문이다. 큰 강은 아니었다. 강변의 수초가 수면을 거의 뒤덮다시피 하고 있는 작은 냇물이었다. 주위는 칠흑처럼 어두워 회중 전등을 꺼버리면 자신의 발 밑조차 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수문의 괸 물 웅덩이 위를 몇 백마리의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빛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수면에 비쳐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기억의 어둠 속에 잠시 몸을 담갔다. 바람 소리가 또렸하 게 들렸다. 그다지 심한 바람도 아닌데 그것은 이상하게 선명한 흔적을 남기며 나의 몸 주의를 빠져 나갔다. 눈을 떠보니 여름밤의 어둠은 조금 더 깊어져 있 었다. 나는 병 뚜껑을 열고 반딧불을 집어내어 3센티미터쯤 튀어나온 급수탑 가장자 리 위에다 놓았다. 반딧불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모양이 었다. 반딧불은 볼트 주위를 비틀거리면서 한 바퀴 돌기도 하고, 부스럼 딱지처 럼 보풀어진 페인트에다 다리를 걸쳐 보기도 했다. 오른쪽으로 한참을 가더니 거기가 막다른 곳이라는 것을 확인했는지 다시 왼쪽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나 서 시간을 들여 볼트의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거기에서 꼼짝도 않고 웅크리고 있 었다. 반딧불은 마치 숨이 끊어진 것 처럼 그래도 꼼짝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난간에 기댄 채 그런 반딧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반딧불도 오랫동 안 꼼짝도 않고 그곳에 있었다. 바람만이 우리의 주의를 스쳐 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수한 느티나무 잎새가 서로 부벼댔다. 나는 오래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반딧불이 날아간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반딧불은 뭔가 생각난 듯이 문 득 날개를 펼치더니, 그 다음 순간 난간을 넘어서 희미한 어둠 속에 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라도 하려는 듯, 급수탑 옆에서 재빨리 원 을 그렸다. 그리고 기 빛의 선이 바람에 스며드는 것을 지켜 보기라도 하듯 잠 시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이윽고 동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반딧불이 사라져 버린 뒤에도 그 빛의 흔적은 내 안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었 다. 눈을 감은 두터운 어둠 속을, 그 가녀린 엷은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영혼 처럼 언제까지나 방황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어둠속에 몇 번이고 손을 뻗쳐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 지 않았다. 그 조그마한 빛은 언제나 나의 손가락이 닿을 듯 말 듯 안타까운 거리에 있었다.

    - 하루키, 반딧불이.

    <묘사>를 가르칠 땐 이만한 예문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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