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분노의 포도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07 02:23:56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중학생 때 스타인벡 소개란에 나온 제목을 보고 도대체 무슨 뜻일까 했지. 포도 농장의 일꾼들이 화가 난 이야기인가 했더니 아니었어. 토지를 잃고 일자리를 찾아 떠도는 이들의 포도송이처럼 영글어가는 분노였지. 그런데 분노를 터뜨릴 대상도 없고 방법도 몰라. 그런 답답한 이야기는 좀 그만 읽고 싶었지만 의무감으로 읽었지. 여기에 비하면 뉴욕3부작에 나오는 인간들의 몰락은 차라리 고상하지. 하루키소설의 인간들이 벌이는 일들은 엄살에 불과해. 너무 현실적인 면만 드러내서 문학답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는데.. 비참한 인간들의 생활상에 대한 묘사 정도는 조정래도 할 수 있다구..
      조정래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퓰리처상을 받았을 거 같다. 영화가 왜 환상에 불과한가에 대해 생각해봤어. 구체적인 악당이 등장한다는 거야. 공포의외인구단이라는 영화를 봐. 해태라는 절대무적의 팀이 없었다면 외인구단을 만들어도 재미가 없지. 고만고만한 팀들 중에서 외인구단이 무조건 이길테니까, 그 때는 외인구단이 해태 대신 타도의 대상이 되고 그 팀을 이기기 위한 노력이 인간승리로 이어지겠지. 뭐든지 그래. 마지막 악당두목 한 명만 죽이면 평화가 찾아오지. 하지만 현실은 안 그래. 악당이라는 '존재'는 형체가 없어.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고 효율과 이익에 관한 관념덩어리인 시스템이라는 것이 최악의 악당이지만 붙잡을 수도 없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까지도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들이지. 그 밑에 깔린 사람들은 조금 더 불쌍하고. 그러니 무르익은 분노를 어디다 대고 발산할 것이야. 그 때문에 스스로를 파멸시키지 않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지. 결국 결론은 시스템에 대항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인데.. 쉽지가 않아. 희생자가 나오고 전원이 희생당한다면야 모를까 나만은 희생당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야. 현실은 그래. 현실에서 절대악과 절대악의 대표자가 존재하기만 한다면 그가 아무리 힘이 세고 권력이 있어도 세상의 희망이 있어. 그 자만 죽이면 되니까. 왕 한 명만 바꾸면 세상에 평화가 오는 시대가 있었다구.. 근데 지금은 대통령을 죽여봐야 또 다른 사람이 대통령을 할 뿐이야. 시스템은 그대로고. 대통령 한명이 이 나라를 망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라를 망치는 건 시스템이지. 따지고 보면 얼마나 덧없는 분노인가 말이야. '그러니 슬픔과 분노는 접어두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뿐'라고 말하는 것이 주인공편의 입에서 나오면 생활력과 인간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긍정적사고이고 주인공의 반대편쪽에서 나오면 기회주의적인 말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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