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구토
  • 관리자
  • 작성일 : 2018-04-12 13:19:20

      그 뿐만 아니라, 그 파편들 자체가 사라져 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면 그 말밖에는 남는 것이라고 없다. 나는 그대로 이야기를 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일화라면 나는 아무도 두렵지 않다. 고급 선원이나 직업적인 만담가는 물론 제외지만'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해골에 불과하다. 이야기 속에는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 한 녀석이 있는데 그건 내가 아니다. 나는 그 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그 나라들에 관하여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이 모르고 있다. 가끔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지도에서 볼 수 있는 아랑쥬에라든가 캔터베리라든가 하는 아름다운 이름을 입 밖에 내는 일이 있다. 그 지명들은 어떤 아주 새로운 이미지를 나의 머릿속에 생성시킨다. 그것은 여행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독서로 해서 그런 것들을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말에 대해서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가장 평범한 사건이 모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것을 남에게 '이야기하기'시작만 하면 되고도 남는다. 그것이 바로 사람이 속고 있는 점이다. 한 인간은 늘 이야기를 하는 자이며, 자기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다.
      사건은 한 방향에서 생기고 우리는 그것을 그 반대의 방향으로 얘기한다. "1922년 어느 가을의 아름다운 저녁때였다. 나는 그 당시 마롬므로 공증인의 서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은 시초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말부터 시작하고 있다. 결말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어딘가 있으며, 그 말에다가 시초로서의 장엄함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 그리하여 이야기는 사실의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순간순간은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을 잡아당기는 이 얘기의 결말에 의해 덥석 붙잡히고, 그 순간은 그보다 앞서는 순간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경험의 직업인이다. 의사들, 신부들, 법관들, 장교들은 마치 그들이 인간을 만들기나 한 것처럼 인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자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설명이나 이치의 세계는 존재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유없이 탄생해서 연약하게 그 목숨을 유지하다가 우연한 만남에 의해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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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필요해요. 당신은 파리인가, 그 근처인가에 보관해 둔 백금으로 만든 미터자와 같아요. 아무도 그런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거예요. ... 나는 그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정확하게 지구 자오선의 4분의 1의 천만분의 1을 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해요. 아파트 속에서 거리를 재거나 천을 자로 재서 팔고 있는 것을 보면 언제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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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트르는 철학보다는 문학에 더 조예가 깊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구토를 쓸 때에는 아직 사상이 확립되기 전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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