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이 윤동주의 동생에게 윤동주에 대해서 묻고 답하기를,
“연전(延專)을 마치고 동지사(同志社)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戀愛)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읍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읍니다.” “인색하진 않었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나 거져 줍데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順)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선수였습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라고 하였는데, ‘심술’, ‘주책’이 긍/부정의 의미 없이 중립적으로 쓰였다. 의미나 용법의 변화는 참으로 신기하다. 예전 같으면 “심술이 어떻냐?”라고 물으면 “좋아요, 나빠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진짜 ‘심술’의 의미였는데, 심술이 좋을 때는 잘 안 쓰고 심술이 나쁠 때 “심술이 나빠요.”라고 오래 쓰다보니, ‘심술’ 그 자체가 마치 나쁜 뜻을 가진 것처럼 굳어진 것이다. 요즘 인성이라는 단어가 ‘심술’의 뒤를 잇고 있는 것 같다. ‘인성’ 그 자체는 중립적인 단어이다. 아직은 “인성이 어떻냐?”라고 물으면 “좋아요, 나빠요” 이렇게 대답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성이 나빠요”라는 말과 더 자주 붙어 다닌다. 그래서 “인성 갑”, “인성 보소”이렇게 말할 때의 ‘인성’은, “(나쁜)인성”의 준 말이다. 정지용이 저렇게 쓴 건 광복 직후인데, 아직 60년밖에 안 된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 사전에 ‘심술’을 찾아보면 부정적인 의미만 실려 있다. 언젠가 50년 내에 국어 사전에서 ‘인성’을 찾으면 ‘나쁜 성격을 뜻함.’ 이렇게 나오는 걸 볼 수 있으려나? 내가 90살쯤 됐을 때 이 글이 기억나면 국어사전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