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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hinews.com/9818 2013.07 김혜경

“한국어로 글쓰기를 배우고 모국어로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글쓰기 과제는 기초반이 시작되는 학기 초부터 시작된다. 학생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글쓰기가 처음부터 쓰기 연습의 중심이 되어 학기동안 여러 장르의 글을 접하고 직접 써 보면 학기가 끝날 무렵이면 그동안 갈고 닦은 한국어를 십분 발휘해 한국어 수업에 대한 감상문을 자유롭게 써 보도록 하고 있다. 언어 교육 과정 중에 글쓰기 교육 과정이란 것이 본디 다른 언어 학습 과정 중에 가장 어려운 과정이라서 선생님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 과제가 과정 중심의 쓰기 교육에 초점을 맞춘 쓰기 과제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맞춰 글의 장르를 선택하고 검토하고 다듬기를 거쳐 마침내 글이 완성되는 점차적인 교육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우수한 학생들의 한국어 글쓰기 솜씨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한 학생의 훌륭한 글솜씨를 소개해 볼까 한다.

한국어 수업에 대한 감상문에 학생들은 꽤 진지하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소감들을 적어 냈다. 학생들 작문을 읽을 때면 오류 하나하나를 수정하느라 작문 내용에 소홀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 감상문을 읽을 때는 나의 모습이 사뭇 달랐다. 작문에서 발견된 오류 수정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학생들이 쓴 작문 내용에 푹 빠져버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학생들의 솔직한 느낌들을 읽고 있어서일 수도 있고, 현저하게 준 오류의 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글은 메리(가명)라는 필리핀계 미국인 학생이 쓴 글의 앞부분이다. 좀처럼 한국에 대한 열의가 식을 줄 모르는 열정적인 여학생이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던 메리는 처음엔 한국어를 무척 어려워했으나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는 여학생이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학생은 간단한 한국어 어순은 물론 적절한 연결 접속어 사용법에 능숙해 있으며 시제 변화와 어미활용에도 꽤 익숙해 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모두가 동감하리라 생각되는 한국어의 불규칙 동사 활용은 이 학생에게도 고충인 듯은 하나 아직 배우지 않은 표현 사용에도 도전해 보려고 하는 것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더욱 칭찬할 만한 것은 한 장 남짓한 감상문에서 발견된 동사 활용 오류는 오직 두 개뿐이었고 “우리”라는 한국 문화어 사용법도 아주 잘 익히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의 한국어 학습자들의 가장 힘든 듣기 연습과 습득한 한국어를 활용할 기회가 월등하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노력해 온 메리의 한국어 실력은 글쓰기에서도 엿볼 수 있어 과히 칭찬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의 한국어 불규칙 동사 오류 수정은 불가피하다. 자유로운 글쓰기 학습의 전 단계로써 매우 중요하고 어느 언어로든 논리 정연한 필자가 되기 위해선 정확한 언어 규칙 지식을 요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자주 범하는 한국어 규칙의 오류는 메리의 한국어의 불규칙 동사 활용뿐만 아니라 격조사의 곡용에서도 오류를 자주 볼 수 있다. 기초반 맥스(가명)의 글쓰기 과제 (김밥 만드는 법)에 나타난 오류를 보면 주격 조사 이/가의 습득이 완전하다고 볼 수 없다. “이번 한국어 수업에서 김밥이 만들었어요. 먼저 오이를 잘라요. 그리고 소금이 섞어요. 그리고 닦광을 잘라요. 5개 달걀하고 소금을 섞어요.” 한국어의 주격 조사의 특이성은 거의 기초반에서 습득하게 되는데 중급반의 학생들에게도 자주 나타나는 오류이기도 하다. 이런 오류는 한국계 미국인 학생과 외국계 미국인 학생 모두에게 서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어 주격 조사의 성격이 참으로 독특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 째로 받침 유무에 따라 주격 조사의 쓰이는 종류가 다르며 구어체에서는 자주 생략되고 다른 격조사로 대치 가능하며 자기를 처음으로 소개할 때는 쓰이지 않고, 있다/없다에는 꼭 “이/가”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영어 모어자들에게는 더없이 희한하고 어려운 언어 규칙이 아닐 수 없다. 영어로는 ‘Do you have a time?’ (이 때 time은 목적격이지만) 한국어에서는 ‘시간이 있어요?’에서 처럼 ‘이’를 사용해 주격이다.

어느 학자는 이러한 한국어의 언어 규칙 사용의 오류를 줄이고 정확성을 위해서 반복적인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고 연계된 학습 활동으로 정확성과 적합성을 인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기억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외국어로 글쓰기란 모국어 글쓰기 능력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모국어 글쓰기에 대한 규칙이 없다면 외국어로써의 글쓰기는 더욱 더 혼란스럽고 비생산적인 과정이 될 것라고 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글쓰기를 하면서 모국어인 영어로 글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어요.”

메리 감상문의 맨 끝에 씌여진 마지막 문장이다. 맨 처음 쓰기 과제를 받고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냐며 어정쩡한 표정을 짓던 메리의 모습을 떠 올리며 감상문 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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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 살기에 익숙해진다는 것, 이전의 습관을 바꾸어 새로운 땅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힘들기는 하나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중략) 원인은 오히려 정신적인 것에 있다. 즉 시간의 체험이 원인이다. 간단없이 같은 생활이 계속되는 경우에는 시간의 체험이 마모되어버릴 위험이 있는데, 이 시간 체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 감정 자체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한편이 약해지면 거기에 따라 다른 편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지루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세상에 여러 가지 잘못된 사고 방식이 만연되어 있다. 일반적으로는 생활 내용이 흥미 깊고 신기하면 그 때문에 시간은 빨리 흘러간다. 단조라든가 공허라는 것은 시간을 잡아늘여서 지루하게 만들지도 모르지만 많은 시간 무한히 긴 시간인 경우에는 공허와 단조는 도리어 시간을 단축하고 무와 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그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흥미로운 시간이면 한 시간이나 하루 같은 것은 그것을 단축하고 날려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이면 그 걸음에 넓이, 무게, 부피를 주기 때문에 사건이 많은 세월은 바람에 불려가듯 빈약하고 공허한 세월보다 훨씬 더디게 지나간다. 따라서 시간이 길고 지루하다는 것은 사실은 생활이 너무 단조로운 나머지 생겨나는 시간의 병적인 단축으로서, 요컨대 많은 시간량이 막간없이 계속되는 단조로움 때문에 무시무시할 정도로 위축되고 만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루하루가 매일매일 같은 생활이라면 수없이 많은 날도 하루와 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이 완전히 같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도 무서우리만큼 짧게 느껴지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시간 감각의 마비를 의미한다. 혹은 적어도 그 이완을 의미한다. 청춘시절이 비교적 더딘 데 비해 그 후의 세월이 차차 바쁜 걸음으로 흘러간다는 것도 이 습관이라는 것에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새로운 습관을 갖는 것과 습관을 바꾸는 것들이 생명력을 유지하고 시간 감각을 신선케 하며 시간의 체재를 젊게 하고 강하게 한다는 것, 그것이 또 생활 감정 전체의 갱신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습관의 갱신, 즉 변화와 에피소드에 의한 휴식과 회복, 이것이 온천행 등의 목적이다. 새로운 곳에서의 처음 며칠은 힘차고 육중한 걸음걸이를 되찾게 해주지만, 그것은 6일 내지 8일 정도 계속된다. 그리고 ‘익숙해짐’에 따라 차차 발걸음이 짧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생에 강하게 집착하는 사람은 나날이 가볍게 스쳐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예컨대 4주일쯤 체류한다면 마지막 한 주일은 불쾌할 만큼 총총히 지나간다. 물론 이 시간 감각 갱신의 효과는 일상 생활 속에 삽입된 여행 후에도 남아 이전의 일상 생활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 오래 남아서 효력을 미친다. 그리하여 여행 후의 며칠간은 역시 신선하고 넓이가 넓고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그것도 며칠 동안 뿐이다. 평소의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거기에 복귀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마의산」,토마스 만 —- 시간에 대한 생각이 신선해서 적어둠. 이 단락의 마지막 말이 압권이다. “이러한 견해를 여기에 삽입한 것은 2, 3일 지나서 한스 카스토르프 청년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사촌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작자 자신도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완벽한 개입이여.. (옛날 소설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다시 생각해보니..밀란 쿤데라 소설도 비슷한 식의 개입이 있었던 것 같군..)

2004 8 11 독서교육 직무연수 개인과제

일단 분량의 제한으로 큰 틀만 썼다. 깊이 있게 쓰고 싶은데 아직 잘 몰라서..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최근의 새로운 논의가 아니다. TV와 라디오가 널리 보급된 뒤부터 독서량과 독서능력의 문제점이 대두되었으니까 이미 20년 넘게 독서에 관한 진지한 논의들이 지속되었다. 그에 반해 학교교육에서 ‘독서교육’은 현실의 문제점을 포괄하지 못한 채 단속적으로 이루어지거나 일부 교사의 의지에만 맡겨져 왔다. 최근 들어 전 교육계에서 ‘독서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의 독자성이 있는 것이어서 ‘학교에서의 독서교육’이라는 짧은 말 속에는 이론적, 현실적으로 해결해야 문제점들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 강조되고 있는 ‘독서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여섯가지로 나누어 살펴 보겠다.

첫째번 문제점은 독서교육이라는 개념 설정의 혼란이다. 독서교육은 실제로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따진다면 하나로 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독서교육인 것과 독서교육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필요하다.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독서교육의 범주를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범주가 설정되지 않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무수한 방법론과 실천사례가 진짜 독서교육의 실천인지 아니면 일반적이 교육활동에 억지로 ‘독서교육’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둘째, 독서교육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소홀히 취급받거나 연구되지 않는 분야을 계속해서 빠뜨리게 된다.

해결책은 모든 연구학교에서 내포와 외연을 명확히 가지는 ‘독서교육’의 개념을 명시하게 한 후 교육청에서 종합하면 된다. 둘째번 문제점은 독서교육의 목표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독서교육을 강요하는 교육청에서 명확한 목표가 서 있지 않기 때문에 단위학교는 각자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우게 된다. 그 결과로 교육청에서는 여러 연구학교들의 연구성과물이 통합이 안 되는 것이다. 교육청에서 독서교육의 길잡이용 교재로 만든 책에도 여러 방안들이 단지 ‘모아져’ 있을 뿐이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통합되어 있지 않다. ‘창의성을 기르는 독서교육’, ‘인성함양을 위한 독서교육’ 이라고 하면 목표는 명확하고 분명 가치 있다. 그러나 이 둘이 통합될 수 있는 길은 ‘독서교육의 활용 방안’ 일 뿐이다. 활용방안이라는 것은 독서교육의 내적완성 뒤에 오는 것으로 처음, 중간, 끝으로 나눌 때 끝에 해당된다. 당연히 독서교육의 처음, 중간에 해당하는 목표는 따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창의성을 기르는 독서교육’이 독서교육의 전부인 양 매몰되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결책은 ‘독서교육’ 자체를 위한 목표설정을 하는 것이다.

셋째번 문제점은 독서교육의 주도권이 교사에게 있지 않고 교육청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독서교육’은 교육청의 주도로 실시되고 있다. 그동안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묵묵히 독서교육을 실천해 온 교사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니라 교육청의 변덕에 의해 우연히 채택된 것이 다시 교사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형편이다. 도서관의 리모델링과 연구시범학교 운영등은 교육의 본질과는 직접적인 포함되지 않는다. 그동안 교사들이 현장에서 독서교육을 실천하면서 안게 된 수많은 문제점들의 수렴과 해결에는 무관심했던 교육청이 이제는 오히려 교사들에게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사들을 소외시키고 교육청의 손발 역할에만 머물게 함으로써 의욕을 잃게 만들고 심지어 반발심까지 불러 일으킨다. 해결책은 독서교육의 주도권을 교사에게 돌려 주면 된다.

넷째번 문제점은 독서교육의 내용이 독서 후 활동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연구학교 보고서를 보면 독서전, 중, 후를 교육과정해설서에 나와 있는 체제를 따라 기계적으로 나눈다. 나누는 과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단지 ‘언급’으로만 그친 뒤 실제 연구는 독서 후 활동을 통해 독서 전 활동을 이끌어 내고 다음으로 독서 중 활동을 보충하고 있다. 독서 전, 독서 중 활동이 독서 후와 대등하게 나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독서 전, 독서 중 활동에 대한 연구도 양적으로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독서의 단계를 무의식적으로 베끼는 것은 무의미하다. 의미있는 단계가 설정되었다면 그 의미에 맞는 각각의 연구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해결책은 독서교육의 내용 선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균형있게 배분하여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하면 된다.

독서교육을 강조하기 전에 해결되어야 할 문제 중에 이론과 실천이 복합된 문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다섯째번 문제점은 독서교육에 있어서의 평가의 부재이다. 이것은 독서교육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독서교육을 통해 달성해야 할 그 무엇이 없거나 흐릿하기 때문에 평가해야할 그 무엇 역시 없거나 흐릿할 수 밖에 없다. ‘창의성을 기르는 독서교육’이라는 주제에서 과연 학생의 창의성을 평가하는 장치가 있을까. 아니 도대체 창의성이라는 것이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법을 통하는지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창의성이 길러졌고 평가했다손 치더라도 오늘날 흔히 말하는 ‘요즘 애들 책 안 읽어서 큰일이다’ 라는 문제의식의 해결에 도움이 되었는가 말이다. 책 읽히려고 시작한 독서교육이 삼천포로 빠진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해결책은 독서교육방법만 연구하지 말고 독서교육평가방법도 연구시범학교를 세워서 그것만 연구하게 하면 된다.

여섯째번 문제점은 교과와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독서는 주로 국어과에서 다루어지고 있고 국어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주도적 학습능력을 위한 독서교육’ 이라고 하지만 현실 교과에 어떻게 적용하는 지에 대한 해결책은 별로 들어 있지 않다. 학생들에게는 모델의 제시도 중요하지만 연습도 그만큼 중요하다.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기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한 번 배운 것으로 성공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적용사례가 적어서 교사들은 지속적으로 수업에 응용하지 못하고 학생들은 연습부족에 빠지게 되고 결국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은 안 길러 지는 것이다. 모델 만드는 연구시범학교는 이미 몇 년 동안 운영해 왔으니까 이제 각각의 교과와 어떻게 연계시킬 지만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한다. 게다가 과연 독서능력이 교과와 연계되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대한 이론적 연구도 매우 미흡하다. 해결책은 독서교육이 각 교과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연계되지 않는데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연구시범학교를 운영하면 된다.

지금까지 ‘학교에서의 독서교육’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살펴 보았다. 첫째, 둘째 문제점은 이론적인 문제고 셋째, 넷째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고, 다섯째, 여섯째는 이론과 현실이 통합된 문제이다. 이러한 제반 문제가 다 해결되기도 전에 아마 교육청에서는 언제 독서교육을 강조했느냐는 듯이 또 다른 것에 눈을 돌릴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생기는 교육적 요청은 수없이 많은데 이것들을 수렴할 생각은 안하고 끊임없이 위로부터의 요청만 강요하기 때문이다. 독서교육이든 뭐든 성공하려면 교사가 학생들에게 책읽기를 강요하기 전에 동기유발을 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교육청은 교사들의 동기유발에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목의 핵심들 – 2006/02/04/01:21:10(am)

국어 과목의 재미는 읽고 들은 것을 따지는 데에 있다

영어의 재미는 다른 나라말을 사용하는 데에 있다

수학의 재미는 딱 맞아 떨어지는 데에 있다

과학의 재미는 안 보이는 것을 보는 데에 있다

사회의 재미는 현실에서 써먹는 데에 있다

음악의 재미는 음악 듣고 노래 부르는 데에 있다

미술의 재미는 그리고 만들고 보는 데에 있다

체육의 재미는 뛰어 노는 데에 있다

과목의 핵심을 알면 과목이 재밌어 질텐데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略傳) / 권혁웅

나의 1980은 먼 곳의 이상한 소문과 무더위, 형이 가방 밑창에 숨겨온 선데이 서울과 수시로 출몰하던 비행접시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박철순보다 멋진 커브를 구사했다 상 위의 김치와 시금치가 접시에 실린 채 머리 위에서 휙 휙 날았다 나 또한 접시를 타고 가볍게 담장을 넘고 싶었으나…… 먼저 나간 형의 1982년은 뺨 석 대에 끝났다 나는 선데이 서울을 옆에 끼고 골방에서 자는 척했다 1980년의 선데이 서울에는 비키니 미녀가 살았다(畵中之餠)이라 할까 지병(持病)이라 할까 가슴에서 천불이 일었다 브로마이드를 펼치면 그녀가 걸어나올 것 같았다 1987년의 서울엔 선데이가 따로 없었다 외계에서 온 돌멩이들이 거리를 날아 다녔다 TV에서 민머리만 보아도 경기를 일으키던 시절이었다 잘못한 게 없어서 용서받을 수 없던 때는 그 시절 끝이 났다 이를테면 1989년, 떠나간 여자에게서 내가 건넨 꽃은 조화였다 가짜여서 내 사랑은 시들지 않았다 후일담을 덧붙여야겠다 80년대는 박철순과 아버지의 전성기였다 90년대가 시작된 지 얼마 안되어 선데이 서울이 폐간했고(1991) 아버지가 외계로 날아가셨다(1993) 같은 해에 비행접시가 사라졌고 좀더 있다가 박철순이 은퇴했다(1996) 모두가 전성기는 한참 지났을 때다

– 시집 <마징가 계보학> 2005년 창비 [출처] 선데이 서울, 비행접시, 80년대(略傳) / 권혁웅

뼈 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있는 갈퀴나무,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나를 위한 나의 희생,나의 자기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주는 바람뿐

뼈아픈 후회 [3년 후 시집에 실으면서 개작함]

– 황지우 –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소설 공선옥 ‘나는 죽지 않겠다’ 저녁 도시락을 까먹었다. 친구들은 학교 식당에서 점심과 저녁을 먹는다. 나는 점심만 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도시락을 먹는다. 도시락을 먹고 나서 도시락 먹는 아이들끼리 매점으로 갔다. 나는 매점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매점에 갔다 온 아이들이 언제나 내게도 과자와 빵과 음료수를 준다. 나는 그것들을 먹고 싶어서 먹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안 먹으면 그것이 더 어색하여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먹는다. 아니, 먹어 준다. 고등학생인 우리들은 더 이상 어린애들이 아니므로, 먹을 것이 생기면 아무렇지도 않게 나눠 먹고 나눠 먹어 준다. 그러나, 나눠 주는 사람이야 별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나누어 준 것을 먹어 주는 사람 입장은 다르다. 나는 매번, 과자나 음료수를 먹어 줄 때마다 목구멍이 따갑다. 오늘 나는 아이들과 함께 매점에 갔다. 과자와 빵과 음료수를 내 돈으로 샀다.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그것들을 아이들 앞에 펼쳐 놓았다. 우리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먹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간식들을 먹는 내가 그러나, 극심한 희열과 그리고 그에 못지않은 극심한 불안감에 치떨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