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부 당시의 대한민국 헌법 前文은 이렇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2015년 11월 현재 대한민국 헌법 前文은 이렇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이승만 정부 당시의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능동을 썼고, 지금 현대 헌법에서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이라고 피동을 썼다.

단기 4281년 7월의 제헌 국회 사람들은 정말이지 당당하게도 말 그대로 대한민국을 ‘건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능동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제9차 헌법 개정 때에는 이미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립된’ 상태였기 때문에 피동을 쓸 수밖에 없었음에 동의하면서도,

저 밑줄 자리에 ‘3.1운동으로 건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라고 써도 아무 문제가 없고, 능동으로 바꾸었을 때 생략된 주어가 저절로 복원되므로 건립의 주체가 드러나는 좋은 점이 있다.

• 일시 : 2014년 6월 26일(금) 10:00~17:40
• 장소 : 한양대학교 백남학술관 국제회의장­

 

광복70주년 기념으로 국어교육관련학회 연합으로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70년간의 국어교육발전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다짐하는데, ‘원로국어교육학자’를 모셔서 대담하는 순서도 있었다. ‎거기에 초대되신 분이 바로 김수업 선생님과 이대규 선생님! 너무나 상징적이면서도 적절한 분들. 이대규 선생님은 성격대로 회고록을 준비해 오셨다.

대담 녹취

미국인들이 미쿡, 킴치라고 읽는 이유는 한국어의 ‘ㄱ’이 무성음이라서 k 처럼 들리기 때문인데,
한국어의 ㄱ,ㅋ은 ‘기’의 유무가 대립인데 반해 영어의 g, k 는 ‘울림’의 유무가 대립이기 때문에
한국어는 [[무기 유성음ㄱ, 무기 무성음ㄱ] [유기 무성음ㅋ]]처럼 묶어지고
영어는 [[무기 유성음g] [무기 무성음k, 유기 무성음k]]처럼 묶어진다.
‘강남’을 Gangnam 으로 적은 것을 ‘눈으로 본’ 미국인들은 ‘g’를 보고 한국어의 ‘ㄱ’에 가깝게 발음한다.
그러나 [강남]이라는 한국 발음을 ‘귀로 들은’ 미국인들은 ‘무성음 ㄱ’을 듣고 한국어의 ‘ㅋ’에 가깝게 발음하게 된다.
 
들어보자: gangnam

스릉흔드 그긋드 으즈므니

사랑한다를 발음하면서 이를 악물면 혀의 높이가 위로 올라가는데, 사랑한다와 같은 자리의 고모음은 스릉흔드가 됩니다.

 

전설고모음 ‘ㅣ’를 발음할 때
노래를 잘하기 위해서 입을 크게 벌리면
같은 자리의 저모음 ‘ㅐ’로 소리납니다.
영상보기: ㅣ개모음
영상보기: i개모음

음운체계를 배울 땐 복화술 영상을 보고 나면 더 신기하다.

‘ㅗ’를 발음할 때 입을 너무 벌려서 원순성을 상실하면
‘ㅗ’와 같은 후설 중모음의 평순모음인 ‘ㅓ’로 들린다.
ㅍ은 양순 파열음이다.
영어의 F 는 순치 마찰음이다.
일본어의 は는 양순 마찰음이다.
한국어의 ‘ㅎ’는 후두 마찰음이라서 ‘ㅂ, ㅍ’와는 전혀 무관한 소리이다.
그러나 일본어의 は(하)는 양순 마찰음이기 때문에 유성음화 하면 국어의 양순음 ‘ㅂ’과 비슷한 ば(바)가 된다.
마찬가지로 기가 첨가 되면 국어의 양순음 ‘ㅍ’와 비슷한 ぱ(파)가 된다.
한국인이 ‘후지산’을 읽으면 일본인이 ‘후지산’을 발음하는 것과는 다르다.
‘후’가 ‘부’로 바뀌고 ‘푸’로도 바뀌는 것이 ふぶぷ 국어의 자음체계표에서는
계열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일본 음운 체계에서는 같은 계열 내의 변화이다.
한국인도 ㅍ를 부드럽게 발음할 때는 두 입술 사이에서 파열하지 않고 마찰시키면 됩니다.
1. 풍자, 믿을 수 없는 화자 또는 라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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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자 변경의 끝판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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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자와 시점의 중요성 > >

–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서술의 한계가 생기는데
– 전지적 작가 시점은 서술의 한계가 없음.
– 이게 꼬이면 엉성한 작품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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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자(서술자) 또는 내포 작가는 실제 작가와는 분명히 다른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 >

내포작가.png
5. 겸디갹 추가

 

토끼전의 주제를 여러 가지로 잡을 수 있겠죠. 보통 토끼의 지혜, 자라의 충성, 부귀영화의 덧없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슬견설이랑 엮어 읽기를 해 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슬견설의 주제가 편견을 버려야 한다죠? 이나 개나 같은 생명인데 인간의 편견 때문에 개의 죽음은 불쌍하게 생각하고 이의 죽음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그걸 바로잡는 게 이규보의 주제 의식이고요.

1학년 교과서의 새봄은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솔이 좋아, 푸른솔 좋아하다보니 벚꽃마저 좋아”라고 함으로써, 벚꽃과 소나무를 구별하여 다르게 가치매기던 자신의 편견을 극복하였음을 깨닫는 내용이죠?

이와 같이 편견의 시각으로 토끼전을 보면 이렇습니다. 교과서 111쪽을 인용하면

“과인은 수궁의 으뜸인 임금이요, 너는 산중의 조그마한 짐승이라. ~~ 너는 죽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지 마라. ~~ 마땅히 사당을 세워 너의 공을 표하겠노라. 이것이 산중에서 살다가 호랑이나 솔개의 밥이 되거나 사냥꾼에게 잡혀 죽는 것보다 어찌 영화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용왕의 의식은 ”토끼의 생명보다 임금의 생명이 가치있다. 따라서 토끼는 임금을 위해 죽어도 된다”라는 것입니다. 토끼전 창작대중의 의식은 ”토끼의 생명이나 임금의 생명이나 똑같다. 따라서 임금을 위해 토끼가 죽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는 것이겠지요.

개의 생명은 가치있게 여기고 이의 생명은 가치없게 여기는 것이 인간의 편견이라면, 임금의 생명은 가치있게 여기고 토끼의 생명은 가치없게 여기는 것이 지배층의 편견이 되겠습니다. 그렇기에 일찍이 이대규 교수님은 슬견설을 현실에 빗대어 귀족들의 목숨은 귀하게 여기고 평민들의 목숨은 하찮게 여기는 당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을 이규보가 이와개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토끼전에서 추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주제의식은 이렇게 되겠죠. 인간의 생명은 모두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따라서 임금을 위해 백성이 희생한다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윤리의식은 허구다로 까지 확장할 수 있겠습니다.)

토끼전 학습활동에 보면 결말을 놓고 조상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활동이 있는데요,

교과서의 본문에 있는 내용은 토끼만 살고 거북이나 용왕이 다 죽으니까, 백성을 괴롭히라고 시키는 임금도 나쁘고, 임금의 명령을 듣고 직접 괴롭히는 신하도 나쁘다는 의식이고요,

자라가 소상강 대숲으로 도망가서 사는 결말은 용왕만 죽으니까, 백성을 괴롭히라고 시키는 임금이 잘못이지 어쩔수 없이 시켜서 한 신하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해서 신하는 살려주는 거고요

화타가 선약을 줘서 용왕까지 살려주는 결말은 임금이 잘못한 거 깨달았으면 됐지 굳이 죽일 필요까지야 있느냐는 거겠죠.

작가가 결말을 결정할 선택권이 있다면 그 선택의 근거는 작가의 의식 속에서 나오겠죠.

백성의 삶이 가장 힘들었고, 현실 비판 의식이 가장 치열했을 때 씌어진 것이 작가A 에 해당하겠네요. 작가C 는 그래도 살만할 때 씌어진 것을 알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