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짓기]선생님과 쌤과 님
  • 관리자
  • 작성일 : 2019-02-10 08:28:21

    http://enews.sen.go.kr/news/view.do?bbsSn=159707&step1=3&step2=1&fbclid=IwAR1YHGfpr4eLp1__DgF4c74KdnEmhJY4sNsQ2JeZZrDj1MqYpqzPxvYQjdk#none

    2019.1.9.
     
      오늘 이걸로 하루종일 시끌시끌했는데..
      예전에 CEO형 관리자 한답시고 교장은 CEO가 되고, 각종 주임쌤이 '부장'이 되면서(과장도 대리도 없는데 웬 부장?) 교무주임, 학생주임은 교무부장, 학생부장이 되었다.
      젊은 선생님들이, 예를 들어 내가 학생부장이면, "김중수 선생님" 또는 "중수 쌤"하고 부를 때, 어떤 일부 몰지각한 부장 교사들이,
      "나는 부장입니다. 이제 '김중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김중수 부장님'이라고 부르세욧!"
      이렇게 한 적이 있었고, 신규 교사들에게도 
      "부장 교사에게는 ㅇㅇ선생님 하지 마시고 ㅇㅇ부장님이라고 부르세요."
    라고 가르쳐 주는 웃기는 문화도 생겨났다. 나도 요즘 부장 아닐 때 친했던 쌤들 빼고는 모두 '김중수 부장님' 하는 통에 '중수 쌤' 소리 못 들어본 지 오래다.
      이런 문화가 뼛속까지 박힌 사람들은 심지어 ‘교장님’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직함 뒤에는 원래 ‘-님’도 붙이면 안 된다. 의사를 ‘의사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교수’는 되고 ‘교수님’은 안 된다고 해도 대학생들이 교수님을 ‘교수’라고 부르기는 불가능하다. ‘검사님’, ‘변호사님’, ‘판사님’은 너무 당연하고 ‘점원님’, ‘종업원님’, ‘배달부님’은 아무도 안 쓴다. 
      서울교육청의 지금 이 사태는 바로 이러한 습성을 없애자는 것인데, 기본 취지는 좋다. 하지만 그 대안이, '-쌤'이라거나 '-프로', '영어이름(이건 스타트업에서 많이 쓰는 방식)'이 된다면, 정말 국민청원이라도 해야될 것 같다.
      일단, ‘-쌤’은 속어라서 안 되고, 프로나 영어이름은 외국어라서 안 되니 남는 건 '-님'인데, '-님'도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는 어렵다. '서로 존대'라는 방식으로는 수평적 문화가 안 된다. 현행 조직에서 하급자는 어차피 존대하던 대로 하니까 심리적으로 변화가 없다. 그저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우해 주마'하는 시혜적인 발상일 뿐이다.
      진짜 수평적 문화를 만들려면 '서로 반말'을 해야 한다. 스타트업에서 영어이름을 쓰는 이유도,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기 때문에 영어이름-반말의 일치가 쉽고, 반말이 통해야 진짜 수평이 된다. 그러면 대안은?
      굳이 호칭을 바꾸려면 '-씨' 정도가 낫겠다. '조희연 님,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희연 씨,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들어보면 바로 느낌이 온다. 아, 이게 수평적인 거구나.
      2014년에, 그러니까 내가 마지막으로 담임했을 때가 떠오른다. 11월에 기말고사 치고 너무 아이들이 심심한 거 같아서 몇 가지를 제안했다. 학급문집 만들기, 우리반 벼룩시장, 미니운동회, 학급야영, 1일 담임, 그리고 대망의 '야자의 날'! 야자의 날은 매주 금요일인데, 이 날은 내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아이들이 나에게 반말을 쓰는 날이다. 나에게 반말을 세 마디 이상 걸지 않는 학생은 남아서 청소하는 벌칙도 만들었다. 그래도 차마 반말을 못하던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하지만 아마 이번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말단 장학사들의 모습이 이때의 아이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간, 학생과 학생간에 서로 '-님'이라고 부르자는 정책은 첫째, 교사가 학생에게 ‘-님’을 붙여서 존중하라는 뜻이다. 나도 대학교에 강의하러 가면 출석 부를 때, 모두가 까마득한 우리 과 후배지만 꼭 ‘손경아 님, 류기현 님, 배기연 님’ 이렇게 부른다. 학생들이 어리둥절하는 건 몇 년째 변함 없다. 둘째, 학생과 학생 간에 ‘-님’하면, 뒤에 자동으로 존댓말이 따라 붙으니까(아까 영어 별칭 뒤에 반말이 쉽게 붙는 것과 같은 원리로), 학생 간의 다툼이나 욕설, 언어폭력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예전에 어느 다큐에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 사이에 ‘-하십시오.’, ‘-합니까?’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미묘하다.
      오늘 시끄러웠던 이유로, 첫째는 ‘-쌤’이라는 호칭의 문제고 둘째는 아이들이 교사에게 ‘-님’이라고 하면 안 그래도 바닥으로 추락한 교권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꺼질 거라는 우려이다. 나는 첫째는 공감하고 둘째는 공감하지 않는다. 호칭 때문에 추락할 교권이라면 그 학생들과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을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차피 교사에 대한 호칭을 자기들 마음대로 부른다. 우리 앞에서는 ‘쌤쌤’하지만 자기들끼리는 ‘중수 중수’하는 걸 정말 교사들은 모르는 걸까? 학생부장이 생활지도부장을 거쳐 안전생활부장, 학생인권부장으로 바뀌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학주’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학생주임이 없어진지가 언제인데. 호칭이 바뀌면 문화가 바뀌기도 하지만 호칭만 바꾼다고 조직문화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리고 조직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식과 노력만 있으면 호칭이 바뀌지 않아도 조직문화는 저절로 바뀐다.
      과연 서울교육청 사람들은 (특히 윗선) 과연 수평적 문화로 바꾸길 원하는가? 조희연 쌤(?)이 재선을 하든 못하든 언젠가는 임기가 끝날 텐데, 그때는 또다시 호칭을 원래대로 돌린다는 공문이 내려오진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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