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미투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17 21:09:58
    http://v.media.daum.net/v/20180217224204506

     "그때 난 생각했어요. 이들은 모두 엉터리 같은 가짜들이라고 말예요. 적당히 그럴 듯한 말을 지껄여대면서 우쭐해져 가지고, 새로 입학한 여학생을 감탄시키고는 스커트 속에 손을 집어넣는 일밖에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구요, 그자들은. 그리고 4학년이 되면 머리를 짧게 깎고 미쓰비시 상사나 TBS, IBM, 후지은행 같은 데에 재빨리 취직해서, 마르크스 따위는 읽어 본 적도 없는 귀여운 신부를 맞아들이고 어린애를 낳으면 제법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주는거에요. 산학 협동체 분쇄는 무슨 놈의 산학 협동체 분쇄야.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어느 날 우리 모두 야간의 정치 집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여학생들은 모두 각기 밤참용 김밥을 스무 개 씩 만들어 오라는 지시가 내려졌었어요. 농담이 아녜요. 이건 완전한 성차별이었어요. 하지만 항상 소란을 피우는 것도 이상할 거 같아서 나는 잠자코 김밥 스무 개를 만들어 갔지요. 매실 장아찌를 넣고 김으로 말아서요. 그랬더니 나중에 뭐라고 말 한줄 알아요? 미도리의 김밥은 속에 매실 장아찌밖에 들어있지 않고 반찬도 딸려 있지 않더라는 거예요. 다른 여학생의 김밥 속에는 연어나 명란젓이 들어 있고 달걀부침도 딸려 있더라는 거였죠.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혁명 운운하며 떠들고 있는 자들이 왜 겨우 밤참용 김밥 따위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는 걸까, 일일이 속에다 매실 장아찌를 넣고 김으로 말았으면 고급이잖아요. 인도의 어린애들을 생각해 봐요."
     "난 혁명 따위는 믿지 않겠어요. 나는 애정밖에 믿지 않아요."
     "피스" 하고 나는 말했다.
     "피스" 하고 그녀도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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