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고바야시 서점
  • 관리자
  • 작성일 : 2018-06-06 14:00:46

    여긴 대마도 이즈하라의 어느 골목 풍경(아마도 오오니시 서점?).
    고바야시 서점이 있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내 부모의 직업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 ‘서점 경영’이라고. 덕분에 반 애들이 모두 나를 두고 몹시 신기해 했지. 읽고 싶은 책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어서 좋겠다고. 어처구니 없지 뭐야. 모두가 생각하는 건 기노쿠니야 같은 대형 서점이야. 그 애들은 서점이라면 그런 대형 서점밖엔 상상 못 하는가 봐. 하지만 현실을 말하자면 참담하기 그지없어. 고바야시 서점, 가엾은 고바야시 서점. 드르륵 문을 열면 눈앞에 잡지가 즐비하게 놓여 있는 거야. 제일 꾸준히 팔리는 건 여성 잡지지. 새로운 성性의 기교, 그림과 해설을 곁들인 ‘마흔여덟 가지 성교 체위 특집’이 부록으로 딸린 거야. 동네 주부가 그런 걸 사갖고 가서 주방 탁자 앞에 앉아 숙독을 하곤, 남편이 들어오면 당장 시험해보는 거겠지. 그게 제법 대단한 읽을거리야. 정말이지 세상 부인네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몰라. 그리고 만화, 이것도 역시 잘 팔리지. 《매거진》, 《선데이》, 《점프》…… 그리고 물론 주간지들도. 아무튼 거의 전부가 잡지거든. 문고판도 조금 있지만 대단한 건 아니야. 미스터리라든지, 역사물, 풍속물, 그런 것밖엔 팔리지 않거든. 그리고 실용 서적 같은 것, 바둑 두는 법, 분재 가꾸기, 결혼식 주례법, 이것만은 꼭 알아야 할 성생활, 담배는 곧 끊을 수 있다 등등. 그리고 우리 집에선 문방구까지 팔고 있어. 계산대 옆에 볼펜이라든지 연필이라든지 노트라든지 그런 걸 진열해놓고 말이야. 그것뿐이거든. 《전쟁과 평화》도 없고, 《성적 인간》도 없고, 《호밀밭의 파수꾼》도 없지. 그게 고바야시 서점이야.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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