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작성일 : 2018-04-12 13:17:48
가오루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주나 생명의 발생에는 아무래도 상상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알기 쉽게 하기 위해서 개체 발생을 예로 드는 게 좋을 것이다.
제일 먼저, 자신의 탄생을 언제라고 생각해야 할까? 어머니의 태내에서 기어나와 탯줄이 끊겼을 때일까, 아니면 난관에서 수정해서 자궁으로의 착상이 완료된 때일까?
발생이라고 하는 점에서 생각하면, 수정이 그 첫걸음이 될 것 같다. 신경계가 생기는 것은 수정 후 3주일 정도 지난 무렵이다.
설사 그 무렵의 태아에게 의식이 있고 사고 능력이 있다고 해보자.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자궁은 우주 그 자체이다. 왜 자신이 여기에 있는지, 태아가 생각한다. 양수라고 하는 물에 잠겨 있으면서 탄생의 구조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겠지만, 자궁 바깥 세계를 알지 못하는 그에게는 설마 자신의 탄생 이전에 생식 행위가 있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자궁 내부에 남은 모든 흔적에 의지하여 추리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양수 그 자체를 생명의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리라. 양수를 원시 지구를 뒤덮고 있는 유기 분자의 농축 수프로 보고, 휘젓는 사이에 20종류의 아미노산이 사이좋게 손을 잡아 생명의 원천인 단백질이 완성되어 자기 복제를 시작한 것이라고... 그 확률은 원숭이에게 타이프를 두드리게 해 세익스피어의 한 구절과 완전히 같은 문장을 완성시킨 것과 같다.
몇 조 마리나 되는 원숭이가 몇 조 년 동안 타이프를 게속 두드린다 해도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확률. 만일 세일스피어의 한 구절이 완성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할까?
틀림없이 어떤 조작을 의심할 것이 뻔하다. 원숭이의 모습을 한 인간이 대신 타이프를 쳤다... 혹은 그 원숭이에게는 지능이 있다...
하지만 양수에 잠긴 태아는 자기 탄생을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만 하고, 그 뒤의 조작에까지는 상상력이 미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바깥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약 36주에 걸쳐 태내에서 성장하여 산도를 통해 기어나와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을 낳은 어머니의 겉모습을 접한다. 더욱 성장하여 지식을 늘린 후에야 그는 어떻게 자신이 탄생한 것인기 그 구조를 정확히 알 수가 있다.
자궁이든, 우주든, 내부에 있는 기간에는 구조를 알 수 없도록 인식 능력이 닫혀 있는 것이 틀림없다.
가오루는 자궁이라는 세계에서 성장하는 태아의 비유를 우주와 지구 생명의 문제에 적용시켜 보려 했다.
자궁에는 수정한 태아를 성장시키는 기능이 대부분의 경우 선천적으로 갖추어여 있다. 하지만 늘 태아를 품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수정이라고 하는 현상은 상당 부분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도 많다.
평생 두 아이를 낳았다고 치면 자궁 내부에 태아가 있는 기간은 총 2년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즉 기능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자궁에는 태아가 없는 때가 훨씬 많은 셈이다.
되돌아 우주를 바라보면 어떨까? 우리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때 우주가 생명을 양육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역시 필연인가? 아니, 가령 양육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자궁에는 태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역시 우연일까? 항상 우주에 생명이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품고 있지 않는 우주 쪽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역시 가오루로서는 답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
- pp. 51 ~ 52, 스즈키 코지 지음, 윤덕주 옮김, 『링 3 The Loop』씨엔씨미디어,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