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어릴 때 내 꿈은 - 도종환
  • 관리자
  • 작성일 : 2018-04-12 11:23:14
    어릴 때 내 꿈은

                                                도 종 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난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 흙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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