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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작성일 : 2020-08-09 23:43:54
익명 님의 글입니다.
>시의 화자는 시인과 동일인이다.
>
>라는 내용이 맞는 말인가요 틀린 말인가요? ?
인강이나 문제집 등에서는 화자가 시인과 동일인물일 수 있다고 가르치지요.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선생님도 많고요.
실제로 시 속에서 시인 본인의 이름을 내비치는 시인도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엄마 걱정'이라면, '2연의 화자가 시인 자신이다.'라고 말할 때
화자는 기형도이고 20대이고 대학생이고 우울한 유년기를 보냈고 시를 쓰고 있고 등등의 정보가 실존인물 기형도와 일치할 뿐이지 실제로는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인물일 수밖에 없어요.
일기조차도 일기 속의 '나'와 현실의 '나'가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지요.
'엄마 걱정'의 화자가 기형도이냐 아니냐보다, '엄마 걱정'의 화자가 어떤 특성과 태도를 드러내는지를 알아내는 쪽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시 속의 증거를 통해 화자를 파악하고, 그것이 시인의 심정이야, 라는 쪽으로 가야지, 반대로
시인이 기형도니까, 윤동주니까, 김소월이니까, 이 시는 이런 내용이야, 라는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식으로 작품 외적인 정보를 끌고 오는 식으로 연습하다 보면 나중에 시인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 시 자체를 독자적으로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길러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화자 이야기를 할 때, 교과서의 '나'라는 글씨를 막 때리면서 물어 봅니다.
"이러면 시인이 아플까?"
"아니요."
"그러니까 이 '나'는 시인이 아닌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나'가 시인이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래? 이 '나'가 시인을 가리키는지 어떻게 알아?"
"읽어 보면 알죠."
"바로 그겁니다. 이 '나'가 시인을 가리킬 때도 우리는 그걸 읽어 봐야 알지 처음부터 알지는 못합니다. 즉, 화자란 이처럼 시에서 해석되어 도출되는 존재이지, '시인'처럼 피와 살을 가진 물리적 실체가 아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