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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변] 고운말 쓰기 프로젝트의 내용에 대해 문의합니다.
  • 관리자
  • 작성일 : 2019-10-03 06:40:23
    질문이 두 가지인 것 같은데 세 가지인 것 같기도 하고..^^

    1.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욕이라고 말해도 좋을지...궁금합니다.
    1.1.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욕이라면, 그리고 신체 기관을 가리킬 때 '좆' '씹'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무 문제도 안된다면, 만약 정말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병신'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일치하는 것이므로 욕이 아니게 될까요? 이런 부분에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욕이 맞을까요?

    1.2. 신체 기관을 가리킬 때 '좆'이나 '씹'이라고 부르는 것은 엄연히 비속어 같은데요. 저는 욕과 비속어를 좀 혼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저는 보통 '소중한 곳' '성기'라고 부르도록 지도하는 편인데요.

    2. 학생의 SNS를 보면서 비속어와 욕을 찾도록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sns인지, 특정 학생의 SNS를 보고 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
    대전제: 욕, 비속어, 또는 선생님이 "개선하고 싶은 언어"를 정의하는 방식을 선생님 주관대로 하시면 됩니다. 욕, 비속어만이 아니라 '자책하는 말', '자기비하어', '일베어', '친구 꼽주는말' 등등 선생님이 개선하고 싶은 말을 학생들과 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언급하신 수업 사례는 제가 정답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학생들에게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식을 나름대로 적은 것입니다. 이 아래의 긴 이야기는 제가 15. 항목을 적을 때 생각한 저의 사상적 배경이므로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1.1. 아이들도 가끔 물어봅니다. "선생님 그럼 진짜 장애인 친구한테 '병신아' 해도 되겠네요."
    제가 저렇게 정의한 이유는 '비속어만 쓰지 않으면 된다.'라고 하는 '어휘 차원의 고운 말'을 넘어서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너희 엄마 창녀."라고 하면,  '너희'도, '엄마'도, '창녀'도 비속어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런 말은 심각한 개선의 대상이지요. '돼지'는 동물의 이름이지만 친구에게 '돼지!' 하는 것은 모욕이 됩니다. 사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병신'에 대해 이야기하면, '병신'에게 '병신'이라고 부르는 것과 '장애인'에게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장애인에게 "야이 병신아."는 욕이고 "야이 장애인아."는 고운 말일까요? 결국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장애인에게도 이름이 있고, 취미가 있고 특성이 있고, 직업이 있고 사회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의 '신체적 결함'을 '호명'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 장애인을 볼 때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장애만'을 본다는 뜻입니다. 그의 극히 일부를 그의 전체로 삼아 부르는 행위는 그것이 어휘적으로 비속어이든 아니든 올바른 호칭은 아닙니다.
    호칭이 아니라 '언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병신이야."는 욕이고 "그는 장애인이야."는 고운 말일까요? 이건 좀 느낌이 다른 것 같긴 하네요. 하지만 왜 "그는 김철수야. 그는 학생이야. 그는 운동선수야. 그는 책벌레야. 그는 영화광이야. 그는 가수야." 대신에 "그는 병신이야."를 선택할까요?
    학생들도 비슷한 질문을 한다고 말씀 드렸지요? 학생들에게도 결론적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욕이냐 비속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내가 하는 이 말을 듣고 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판단해서 언어 생활을 하라는 것이 이 수업의 본질입니다. 그것이 결국 배려하는 말하기이고요.

    1.2.
    요즘은 비어와 속어를 묶어서 '비속어'라고 많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른 것이지요. '속어'는 점잖지 못해 말하는이의 체면만 깎아내리지만 '비어'는 대상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쓰여 듣는이까지 불쾌해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엄밀한 구분이 어렵기는 합니다. '화가 나다'를 '뚜껑이 열리다'라고 말하면 '속어'이고 '화가 나다'를 '기분이 좆같다'라고 말하면 '비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좆'과 '성기/생식기/소중이'를 비교하는 부분에서, 저는 저만의 생각이 있습니다.
    남자의 성기를 '성기(性器)'라고 하면 점잖은 말이고 '좆'이라고 하면 비속한 말이라고 하는 사전의 정의를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빨'은 비속어이고 '이'는 일상어이고 '치아(齒牙)'는 높임말입니다.
    집은 값싸고 건물은 비싸고 빌딩은 엄청 비쌉니다.
    춤은 후지고 무용은 고급스럽고 댄스는 화려합니다.
    부엌은 힘들고 주방은 평범하고 키친은 쾌적합니다.
    반대로
    밀크는 고급스럽고 우유는 일상적이고 소젖은 아무도 안 먹지요.
    저는 성기와 좆/씹의 관계도 그와 같다고 봅니다. 성기는 남녀를 함께 이르는 말이니까 굳이 맞추자면 좆=음경, 씹=음부(전음) 이렇게 될 텐데, 좆은 천한 말이고 음경은 고상한 말일까요? 음모는 고상한 말이고 씹거웃은 천한 말일까요?
    씹하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씹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성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섹스하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어느 쪽이 듣기 좋으세요? 씹하다는 방앗간에서 하고 성교는 여관에서 하고 섹스는 호텔에서 하는 느낌이 드시나요?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온, 남의 나라 말은 고상하고 순 우리말은 일상적이고 천한 것이라는 의식을 좀 바꿔 주고 싶었던 이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똑같아요. 유럽에서도 자국어는 천한 언어, 고상한 말은 라틴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고 영국만 해도 왕실에서는 프랑스말이 고급스럽다고 영어 대신 불어를 썼지요. 저는 아이들이 우리말을 사랑했으면 좋곘어요.



    식물이 참 좆 같이 생겼다.(띄어쓰기 유의)
    식물이 참 음경 같이 생겼다.
    식물이 참 남자 성기 같이 생겼다.
    식물이 참 남자 생식기 같이 생겼다.

    어쨌든 저는 '한자어' 사용을 되도록 줄이자는 쪽이기 때문에, '좆'보다 '음경', '성기', '생식기'가 더 점잖은 표현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좆'과 '씹'을 정확하게 알아야
    존나 예쁘네, 졸라 귀엽네, 존나 맛탱구리네, 존나 아프네, ..... 라는 말을 할 때마다 내 눈앞에 "남자의 성기"를 들이미는 시각적인 불쾌감이 즉물적으로 느껴지고, 저는 그런 불쾌한 이미지를 자꾸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언어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합니다.

    위에 잠시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씹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요, 주로 이렇게 번역됩니다.

    그녀는 나의 페니스를 물고 나의 고환의 무게를 달았다. 나는 그녀의 바기나에 입을 맞추었다.

    이걸 우리말로 바꿔볼까요?

    그녀는 나의 좆을 물고 나의 불알의 무게를 달았다. 나는 그녀의 씹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나의 자지를 물고 나의 불알의 무게를 달았다. 나는 그녀의 보지에 입을 맞추었다.

    세계적인 작가이며 노벨문학상 후보가 거의 야설 작가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이지요. 또한 한국 작가가 아니므로, 어느 쪽 표현이 작가의 본래 의도인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어쩌면 본국에서는 야설 작가로 통할지도 모르지요.

    "똥구멍"을 사전에 찾아보시면 "항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래 '항문'이 있었고 그것을 비속하게 이르기 위해 '똥구멍'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원래 똥구멍이었는데, '항문'이라는 한자어가 들어오니까 한자어는 고상해보이고 순우리말은 저급해보이는,
    언어의 일반적인 현상에 의한 결과일 뿐이지요. 좆, 씹, 자지, 보지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선생님 쟤가 저한테 뻐큐를 날렸어요."라고 할 때, 이렇게 말해줍니다.
    "얘들아 '뻐큐'라는 외국어 쓰지 말고 '쟤가 저한테 꼴뚜기질을 했어요.'라고 예쁜 우리말을 써야지."

    2. 저는 주로 페이스북을 하는데 학생들이 친구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친구들의 댓글 활동이 알림으로 떠서 가 보면 가끔 욕을 합니다. 그걸 캡처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이럴 때 고운 말로 고쳐보라 하면 아이들이 그저 '욕설 어휘'만 빼고 그냥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칠 줄 알아도 다음번에 실천이 안 되는 이유는, 저 상황에서 아이들이 '욕설'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의 상태가 있는데, 욕설을 뺀 말투로는 그 감정이 해소/표현/분출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혀 속이 시원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휘 수준이 아닌, 담화 수준의 고운 말 쓰기를 아이들에게 제안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욕을 '재미 삼아' 쓰는 경우는 참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 SNS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모욕'의 의도보다 '웃음'을 위해 욕설을 쓰는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폭설(暴雪)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이런 글에서, 비속어를 빼고 말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아이들이 비속어를 쓰는 심리의 절반은 이 시와 같습니다. 비속어 교육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지요. 어릴 때는 그저 재미있고, 웃기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게 본능이고, 근대 교육은 본능을 억압하는 게 본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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