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시간에 다를 별(別) 자가 나와서 '별로'라는 표현에 대해 이야기했다. '별로'는 평범함의 기준과 다르다[別]는 뜻이다. 어떤 평범함의 기준선이 있다면, 그 기준과 같으면 평범한 것이고, 그 기준과 다르면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좋은 쪽으로 평범한 것과 다를 수도 있고, 안 좋은 쪽으로 평범한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별로'라는 말만 가지고는 좋다는 말인지 나쁘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중학교 때 배운 교과서에는 심청전이 나오는데, 심청이가 팔려가기 전에 마지막이라고 심봉사한테 정성껏 밥을 지어 먹이는 장면이다. 심봉사가 이렇게 말한다. "청아 오늘이 무슨 날이냐? 반찬이 별로 좋구나." 이때 '별로'는 평범한 것과 좋은 쪽으로 다르다는 뜻으로 쓰였다. 만약, "반찬이 별로 안 좋구나." 라고 말했다면 '별로'는 평범한 것과 안 좋은 쪽으로 다르다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그런데 '별로'라는 말이 둘 중에 안 좋은 쪽으로 자주 쓰이다 보니 이제는 아예, "별로야."라고만 말해도 저절로 "안 좋아."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것은 중립적인 의미였던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만 점점 축소되는 예이다.
'너무'라는 말이 있다. '넘다'에서 온 말일 것이다. 이 역시 어떤 평범함의 기준 선을 넘었다는 뜻이다. 좋은 쪽으로 넘을 수도 있고, 안 좋은 쪽으로 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는 원래 안 좋은 의미를 나타내는 말과 어울려 쓰도록 되어 있었다. '그건 너무하네.'라는 말도 안 좋은 쪽으로 기준 선을 넘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분명히 출연자가 "너무 좋아요." 이러는데 자막에는 '매우 좋아요.' 이렇게 떠서 어색함을 참을 수 없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히 '너무'의 용법이 정해져 있고 텔레비전에서도 계속 제대로 쓰라고 교육하는데도 사람들은 '너무'라는 말을 좋은 쪽으로도 계속 써 왔다. 이는 당연한 현상이다. '아주, 매우, 굉장히, 정말, 완전, 진짜 좋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의 느낌을 '너무 좋다.'라는 말에 담아내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확한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이 개발되면 사람들은 쾌감을 느끼고, 그 표현을 더 자주 쓰게 된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은어를 쓰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이것은 부정적인 의미였던 말이 중립적인 의미로 점점 확장되는 예이다.
마지막으로 '소름 끼치다' 또는 '소름 돋다'는 어떤가? 원래 '소름'은 '춥거나 무섭거나 징그러울 때 살갗이 오그라들며 ~~'라고 해서 딱 봐도 '안 좋은 쪽'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래 그림은 '소름 끼치다'의 정확한 용법이다.
그런데 한 몇 년 전부터 '소름'의 용법이 확장되는 듯하다. '너무 좋다'로도 표현할 수 없는 말의 느낌을 이제 '소름끼치게 좋다'에 담아내려는 것 같다. 아래 그림은 둘 다 칭찬 같기는 한데 사전대로라면 '섬세하고 예리해서 무섭거나 징그럽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앞에서 '별로'라는 말이 '안 좋다'와 오래 같이 쓰이다 보니 "별로야."라고 말하면 "안 좋아."와 같은 뜻이 된다고 하였는데, 그것처럼 이제 "소름." 또는 "소오름."만 써서 "(소름 끼치게) 좋다."는 말을 대체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소름 끼친다." 또는 "소름 돋는다."라는 말만으로 "소름 끼치게 좋다."를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좋아서 소름 끼치는지, 안 좋아서 소름 끼치는지는 잘 판단해서 들어야 할 일이다. 마이클 잭슨은 말년에 참 소름 돋는 인생을 살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