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봄방학 직전, 1년 수업이 끝날 때면 1년간의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받는다.
이면지 한 장 주고 '전체 느낌', '좋은 점', '나쁜 점', '기억나는 수업' 등을 적으라고 하면 한 바닥 가득 편지를 써 준다. 봄방학 때 기운 나는 편지 100장을 읽으면서 1년간의 피로를 해소하는 것이다. 착하고 고마운 아이들이다.
영선중학교에 있을 때는 이면지가 아니라 좀 다른 방식으로 학생들의 수업 소감을 받았다.
NEIS에서 아이들 성적통지표를 hwp 파일로 받아서 내용을 다 지우고
국어, 영어, 수학... 자리와 해당 점수 자리를 비워둔 양식을 만들어서
"국어교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이 뭔지 너희가 과목을 만들고 내 점수를 매겨라."
그 아래에 '학교에서 가정으로' 칸도 만들어서
"우리 부모님한테 가정통신문 좀 써라."
이렇게 하였다.
아이들마다 교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관점으로 교사를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올해 같은 비대면 시기에는 온라인으로 하려면 라이브워크시트로 하면 되겠다. https://www.liveworksheets.com/hr1407885ku )
'과목' 부분은 전문지식, 유머감각, 판서, 학습지, 따뜻한 마음, 옷차림 등등을 예시로 제시해 줘도 되는데, 너무 많이 제시하면 아이들이 생각이 굳어져서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를 주는 것이 더 좋다. 물론, '담임' 칸은 학생이 자기 이름을 쓰면 된다.
사실 저때 저런 걸 준비한 이유는 재미도 재미지만 공부 못하는 동네 애들이라 자존감이 낮고 의욕도 없어서,
"만약 너희의 통지표에 국어, 영어, 수학, 과학이 아니라, 명랑함, 교우관계, 알바력, 뻔뻔함, 그리기, 춤추기, ... 이런 게 들어간다면 모두 100점짜리 통지표를 받지 않겠느냐, 성적이라는 하나의 기준에서 좋은 점수를 못 받았다고 실망할 필요없다."
하고 나서
"이건 내가 100점 자신 있다, 하는 과목을 10개 골라서 자기 통지표를 새로 만들어보자, 그리고 '학교에서 가정으로' 칸에 칭찬을 잔뜩 적어 보자!"
이렇게 이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그 동네 떠나온 뒤로는 이면지 한 장이면 충분했다. 가끔 이면지 두 장이 필요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