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교지를 잘 안 만든다. 아무도 안 읽는데 몇백 만원씩 쓰기 아깝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에 중학교 고등학교 교지를 모두 간직해 둔 사람으로서 교지 만들기에 찬성한다. 학교에서 교지 업무가 사라진 이유는 특정 개인에게 과중하게 업무가 편중되기 때문이다. 특히 제일 바쁜 학년말에 그것도 담임에게.
내가 부산영선중학교 있을 때 우리 교장이
"우리 교지 안 만들래?"
해서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자
"개교 55주년 기념으로 딱 하나만 만들자."
하길래 내가
"올해만 내고 내년에 절대 교지 업무를 만들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제가 만들겠습니다."
하고 맨땅에서 교지를 만들었다. 55주년 기념이라서 할 거리는 넘쳤다. 몇십 년 전에 졸업한 선배들한테 회고사 좀 써 달라 하고, 몇 년 전에 졸업한 선배들한테도 회고사 좀 써 달라 하고, 옛날 앨범 뒤져서 학교 리모델링하기 전의 사진들 좀 모으고, 55년 동안의 영선중학교는 이랬다, 이제 앞으로 영선중학교는 어떠해야 하겠는가?를 중심으로 기획을 잡았다.
여기저기서 예산을 돌리고(물론 이건 교장이 해 줌), 문예부 겸 교지편집부를 급조해서 모집하고, 계획서를 나눠주고 업무 분담을 하고, 기안을 올리고 인쇄소와 미팅하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책 만들기를 좋아한다. 책을 쓰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드는 게 재미있다. 그래서 학년말이 되면 학생들 문집 만들어 주는 게 나의 취미이다. <푸른글터> 편집위원으로 7년째 잡지를 만드는 일도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른다. 교사가 안 됐다면 출판사에 취직했을 것이다.
그랬는데, 그 다음 해에 교장이 딱 한 번만 더 만들자 해서 내가 또 만들었다. 교장이 떠나고 교지는 사라졌다. 2년 뒤에, 새로온 교장 샘이 또 나를 불렀다. 전에 그 교지 한 번만 만들어 주면 안 되겠냐? 속으론 좋았지만 겉으로는 아주 선심 쓰는 듯이 이런저런 조건을 걸어서 챙길 거 다 챙기고 2012년도에 마지막으로 교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책 만들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국어과라는 이유로, 문예부 업무라는 이유로 울며겨자먹기로 교지를 만든다면 참으로 난감하고 힘든 일이다.
그때 자료를 정리해서 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