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짓기]1년 마지막 수업용 편지
  • 관리자
  • 작성일 : 2019-02-10 08:33:04
    3학년이 졸업할 때에는 꼭 편지를 써서 읽어줬는데
    1년간 수업'만' 했던 학년에게 편지를 써 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걸 보면,
    정말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그걸 읽고 우는 아이들도 마찬가지.

      오늘은 마지막 국어시간입니다. 마지막 국어 시간을 맞아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지금 기분이 후련하고 상쾌하고 안심되고 고맙고 감동적입니다. 또 약간 아쉽고 불안합니다. 모든 수업을 끝내서 후련하고 1년 동안 준비한 것을 빠뜨리지 않고 다 해서 상쾌하고 안심되고, 내가 준비한 수업을 끝까지 함께 해 줘서 여러분에게 고맙고 감동적입니다. 또 “국어의 음운 변동”과 “문장의 확장”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못해서 아쉽고 고등학교에서 기억이 안 나서 여러분이 고생할까봐 불안합니다.
      1학기에 시 수업을 하면서 시낭송 대회를 소개하고 교내 시낭송대회도 하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시낭송을 하겠어?’라고 불안하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도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고 결국 연말에 학예제에까지 시낭송 공연을 넣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여러분의 가능성을 언제나 믿어야 하고, 내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습니다. 어떤 선생님들은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안 돼.’, ‘감천 아이들은 ㅇㅇ를 못해.’라는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여러분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학생들의 잠재력을 보는 눈이 없는 어른들이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1학기에 은어, 비속어, 유행어, 유의어 등으로 보고서를 쓰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초1부터 중1까지 보고서를 쓰거나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본 적이 있는 아이들은 괜찮았겠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많이 힘들고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이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친구의 발표를 듣고 던졌던 “전문어는 은어인가요?” “사투리도 은어인가요?” “새말이 사라지면 유행어인가요?” “비속어는 금기어인가요?” 이런 질문들은 어른들도 깜짝 놀랄 만한 훌륭한 질문이었습니다.
      1학기에 계속했던 3분 글짓기도 여러분의 글 하나하나가 재밌고 기발하고 놀랍고 신선하고 때로는 감동적이고 뭉클하고 어디에 전시해도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2학기에 시 창작, 수필 창작, 소설 창작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여러분이 쓴 시와 수필 중 일부는 청소년 잡지인 ????푸른 글터????, 국어 교사 잡지인 ????함께 여는 국어 교육????에 실려 전국의 청소년과 국어 선생님들이 읽게 되었습니다. <요산문학제> 백일장과 <킥킥 생활글 공모>에서도 상을 타서 상금을 받는 친구도 나왔고, <2018 선생님 자랑대회>에서도 ‘교육장상’을 받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소설 고쳐쓰기를 제대로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합니다.
      2학기에 가장 기대했던 수업은 건의문 프로젝트였습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여러분이 사는 사회와 여러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꼭 느끼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쓴 건의문이 학교 홈페이지와 구청, 청와대, SNS에 올라올 때마다 놀랍고 대견하고 기특하고 멋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건의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서 논의가 되고 그 중 일부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랍고 감동적이었습니다. 건의문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할 때, 매체 활용도 잘했고 특히 1학기 때 보고문을 발표할 때에 비해서 무척 성장한 것이 느껴져서 흐뭇했고 멋지고 놀라웠습니다. 아마 발표를 보는 여러분 모두가 그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기대한 것은 바로 그 “성장”입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과”가 아니라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나는 국어를 못해요. 나는 영어를 못해요. 나는 수학을 못해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지금 국어, 영어,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어, 영어,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못해요. 실제로 발표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발표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발표를 잘 못했으니까 “여기 여기를 고치면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조는 영화를 못 찍었어요. 망쳤어요. 그것이 아닙니다. “여기 여기를 고치면 더 좋은 영화가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라는 뜻입니다. 나는 시를 못 써요. 글을 못 써요. 나의 이상한 글을 보세요. 아닙니다. 그 시와 글을 어떻게 하면 더 낫게 고치는지를 조금씩 배우고, 배운 대로 연습하면 결국 여러분은 훌륭한 결과에 도달할 것입니다. 수학도 영어도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글을 잘 못 읽어요.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못하는 사람은 할 수 있게 되고,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되는 그 과정에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것입니다. 항상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나는 3학년 때에도 여러분과 함께 수업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점점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흐뭇하고 기대되고 설레기 때문입니다. 3학년 국어도 함께 해 주기를 바란다는 몇몇 학생들의 말에 힘이 나고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3학년 수업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쉽고 긴장되고 불안합니다.
      내가 3학년 때에 수업을 맡든 안 맡든,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하겠습니다. 위에 썼던 모든 것을 잊어 버려도 이것만은 기억해 주세요. “누가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을 따라 말해준다. 그 사람이 어떤 기분인지를 말로 해준다. 그리고 남의 말이나 행동으로 내가 피해를 입었을 때, 그 말과 행동을 알려준다.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말로 표현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한다.” 80살까지 이 말을 실천해 준다면 나는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습니다.
      나는 이 편지를 읽은 여러분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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