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짓기]뭐든지 말로 하는 애
  • 관리자
  • 작성일 : 2022-12-04 23:37:38

    9살 된 연아는 길메리 유치원을 다녔다. 길메리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의 도전 정신을 길러주기 위해 어린이들에게 조금 힘들 수도 있는 행사를 한다. 하나는 먼거리 달리기 라는 마라톤이고 하나는 승학산 등산이다. 5세 때는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등산을 하고, 6세 때는 7세 형아들이 한 명씩 붙어서 2인 1조로 등산을 하는 방식이다. 모든 아동은 꽃씨가 든 풍선을 손에 꼭 쥐고 올라간다. 정상에 모두 모이면 풍선을 날리면서 저 꽃씨가 어딘가에서 예쁜 꽃을 피우기를 기원한다. 아이들은 나뭇가지에 닿아 풍선이 터지거나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모르고 풍선을 날려버리거나 하지 않도록 풍선을 정상까지 운반하는 또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6살 된 민이가 지난 일요일에 승학산 등산에 도전하는 날이었다. 민이가 7세 형아들과 등산을 하는 동안, 연아도 졸업생 신분으로 함께 산에 올랐다. 길메리 유치원은 졸업생을 반기는 분위기라 졸업생들에게도 풍선을 하나씩 나눠주고 간식도 다 챙겨주었다.

    출발 장소에 갔더니 연아와 함께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 2명을 만났다. 한 명은 연아처럼 동생이 길메리 유치원에 다녀서 따라 온 것이고 한 명은 동생이 없지만 그냥 행사가 좋아서 놀러 온 것이었다.

    그 중 동생을 따라 온 친구가 연아를 보고 

    "안녕? 너 나 기억나? 난 너 기억나는데."

    했다. 졸업한지 만 2년하고도 8개월만에 만났지만, 3년을 같이 다녔으니 기억이 안 날 리는 없다. 하지만 연아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연아는 원래 성격이 그렇게 낯을 가리니까 그렇다 치고, 그 친구는 참 활발하고 사교성이 좋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잠시 후 그 옆에 있는 남학생을 옷으로 막 때리고 있었다. 우리 연아도 저렇게 활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산에 올랐다. 

    가는 길에 그 친구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애는 어릴 때 너무 소극적이어서 행사 때 무대 위로 안 올라 간 2명 중 한 명이었어요. 유나도 3월 내내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있던 게 생각나네요."

    아이가 그 말을 받아서

    "지금은 장난꾸러기가 되었지요."

    하더니 혼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지금 모습을 보면 어릴 때 소극적이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낯을 가리는 우리 연아도 무대에 올라갔는데 지금 이렇게 활발한 얘가? 우리 연아도 조금 변했는가 어떤가 생각하는데 그 아이가 또 말을 했다.

    "유나(연아)는 어릴 때 뭐든지 말로 하는 애였어요."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아이들은 몸으로 막 표현하는데, 유나는 뭐든지 말로 했어요."

    어린 아이들이 재밌는 놀이, 신기한 물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들을 만나면 일단 몸으로 부딪혀 보는 것과는 달리 소극적인 연아는 어떤 놀이든, 아무리 재미있어 보이는 것도 오래오래 지켜 본 다음에 겨우 참여했고, 직접 참여하기보다 규칙이나 누구 말이 맞는지 같은 걸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데에 익숙했다. 친구들도 그걸 이미 알고 있었구나 싶어서 신기했다.

    한참 올라가니까 세 친구는 어느새 한 덩어리가 되어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하고 풍경도 관찰하고 하면서 신나게 어울렸다. 아까 그 친구가 또 말했다.

    "유나도 지금은 장난꾸러기가 되었네요."

    사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소극적이어서 그렇지 우리 연아가 장난꾸러기가 된 지 오래되었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어쨌든 모두 무사히 정상에 올라서 소중한 풍선을 멋지게 날리는 데에 성공했다. 내려오는 길도 1시간 넘는 길인데 아이들은 헤어짐의 아쉬움을 충분히 느끼며 같이 내려와서는 다음에 만나자고 아름다운 약속을 하며 헤어졌다.

    무대 위에 올라가기 싫어서 엄마에게 안겨 있던 애가 길가에서 개다리춤을 추게 되고, 남들이 일단 시도해 볼 때 말로만 참여하던 애가 커서 장난꾸러기가 된다. 우리 연아도 언젠가 다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서

    "너 나 기억 나? 난 너 기억나는데."

    하게 될 날이 올까? 지금 모습을 보면 상상은 안 되지만, 아이들은 결국 자랄 거라 믿는다. 그때까진 

    "넌 왜 이렇게 소극적이니? 네가 먼저 가서 말 걸어 봐. 뭐든지 도전해 봐야지."

    하는 말을 참고 또 참는 게 부모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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